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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ulture & Life] 인재진 자라섬국제재즈페스티벌 총감독

"찌글찌글한 청춘 딛고 재즈축제 꽃피워… 인생은 길게 봐야죠"






"남들과 다르게 살아보자" 인생 모토 그렇지만 하는 일마다 실패의 연속

자라섬축제도 "예산낭비" 우려속 시작 이제는 27만명 찾는 행사로 자리잡아

지난 10년동안 페스티벌 치르며 하루아침에 되는 일 없는 것 배워


그는 얼마 전 가평 집에 느티나무 한 그루를 심었다. 풍성한 가지와 잎사귀에 반했던 나무는 거의 선인장 꼴로 집에 왔다. 조경업자는 3년이 지나야 나무가 자리잡는다고 했단다. 하지만 일반적인 사람들은 이를 못 견뎌 한다. 봄에 심은 묘목에서 가을이면 열매를 기대한다. "살면서 자신에게 어떤 일이 생길지 누구도 모르고, 그게 흥미진진합니다. 어떤 일이든 이루고 만들어가는 게 단기간에 되지 않음을 페스티벌을 운영하는 지난 10년간 배웠습니다. 요즘 젊은이들도 인생을 페스티벌처럼 길게 생각했으면 합니다. 저처럼 그 과정이 '찌글찌글'할 수 있지만 그 자체가 지나고 보면 모두 의미 있고, 피 되고 살 되는 날들이더군요. 우리 회사의 사훈이 2개인데 하나가 '꾹 참자', 또 하나는 '안 되면 말고'입니다. 그런 마인드가 필요합니다."

자연경관이 아름다워 대학생 MT 단골지역이 되어온 곳, 하지만 경제적으로나 문화적으로 낙후됐던 가평. 그중에서도 건축용 모래나 채취하던 잡풀 무성한 83만㎡(약 25만평) '자라섬'. 축제문화 자체가 익숙지 않던 2004년 9월 그곳에서 음악 페스티벌이 열린다. 그것도 꽤 낯선 '재즈' 음악으로. 공연전문가들은 말리고 지역주민들도 예산낭비라고 반대한 이 '터무니없는' 페스티벌은 10년 사이 관람객 27만명의 축제로 성장했다. 바로 '자라섬국제재즈페스티벌'이다.

지난 16일 서울 신사동의 한 음향업체 사무실에서 만난 인재진(49·사진) 자라섬국제재즈페스티벌 총감독은 마냥 유쾌하고 행복해 보였다. 페스티벌에 대한 강한 자부심을 비친 그는 "이제 프로그램·관객·편의시설 모두 전세계 어디에 내놓아도 손색없습니다. 해외 뮤지션들이 기절초풍하죠. 재즈 공연만으로 관람객을 이만큼 모으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고들 하죠. 게다가 해마다 20%씩 관객이 늘어나 공연장을 늘리는 공사를 하고 있습니다. 세계 최고요? 우리 관람객의 절반은 재즈 팬, 다른 절반은 소풍 오신 분들이죠. 가족들·연인들이 행복한 시간을 보내고 건강한 행사로 지속될 수 있다면 그 이상의 욕심은 없습니다."

◇'찌글찌글'했던 청춘=20대는 내내 찌글찌글했다. 경찰대에 가고 싶었지만 떨어졌다. 재수해서 고려대 영문과에 갔지만 학교생활은 재미없었다. 당구만 늘었다. 1학년 때 이미 400. 졸업이 다가왔지만 방향을 잡지 못했다. 준비한 것도 없었다. 그저 남들처럼 살지는 않겠다는 정도. 기업 취업설명회 한 번 안 갔다. "다른 사람들이 많이들 하는 것은 안 한다는 게 제 원칙이었어요. 속으로 그랬죠. 난 쟤들이랑 다르게 살아야지."

대신 시험에는 열심이었다. 행정고시·외무고시에서 광고대행사, 방송사, 신문사, 대한항공 조종사 시험까지 줄기차게 지원했다. 결과는 대부분 1차 시험에서 낙방. 정말 징그럽게 되는 일이 없었다. 겨우 의류회사에 들어갔지만 반년 만에 때려치웠다. '언젠가 나도 저들처럼 되겠구나' 하는 강박감이 밀려왔다. 그러곤 친구들과 동네 생활정보지 '제3강의실'을 내지만 두 달 만에 쫄딱 망했다.

그저 '다. 르. 게.' 어쩌면 뻔한 수순이었는지도 모른다. 남들이 많이 하지 않는 일을 한다는 것, 대체로 '돈이 안 되는 일'뿐이었다. 그때 동아리 밴드부에서 넘겨 보던 음악, 재즈가 눈에 들어왔다. 왜 하필? 당시만 해도 재즈는 국내 팬이 많지 않았고 더구나 직업으로 하는 사람은 드물었다. 인 감독도 사실 재즈가 견딜 수 없이 좋아 시작한 게 아니었다. "지금도 재즈는 '애증(愛憎)'의 대상입니다. 재즈 때문에 너무 많을 걸 잃고 또 얻었죠. 시간이 지나면서 특별해지고, 일하면서 그 매력을 알게 됐죠."

하지만 잠시의 외도가 7년을 뺏어갔다. 바로 중국 인형극단을 초청해 공연한 '손오공 대모험'이 완전히 망했다. 손해만 2억원. 어찌어찌 공연료는 치렀지만 이후 7년간 신용불량자로 살았다. 어묵 장사, 불법 택시영업(속칭 '나라시') 등 (그의 표현대로) 별 '뻘짓'을 다했다.

하지만 그는 씩씩하다. 최근 출간된 책 '청춘은 찌글찌글한 축제다'에서는 물리학자 닐스 보어의 말을 인용한다. "전문가란 특정 분야, 자기 주제에 관해서 저지를 수 있는 모든 실수를 이미 저지른 사람." 그래서 물었다. 당신은 전문가입니까.

"실수라면 꽤 많이 했죠. 이제 해서 되는 것과 안 되는 것을 좀 알 것 같습니다. 하지만 기획자의 삶이란 여전히 쉽지 않아요. 한때 누군가 조언을 해줬다면 이렇게나 많은 '뻘짓'은 안 했을 거라고 생각했지만 지금은 그것조차도 좋았다고 생각합니다. 재즈가 제게 가르쳐준 거죠."

◇'인생의 전환점' 자라섬국제재즈페스티벌=그렇게 1,000여회의 공연과 자칭타칭 '희귀 음반' 기획을 이어가던 그가 핀란드에서 '포리재즈페스티벌'을 보고 충격에 빠졌다. 겨우 인구 8만명의 해안도시 포리에서 연평균 15만명이 관람하는, 그것도 대중적이지 못한 재즈 페스티벌이 열리고 있었던 것. '우리도 가능할까?' 내심 반신반의하면서도 열심히 재즈 페스티벌을 말하고 다니던 그에게 가평군에서 연락이 온다.

우여곡절 끝에 2004년 9월 첫 축제를 열었다. 하지만 둘째 날부터 폭우가 쏟아지고 공연장에 물이 찼다. 지붕 없는 공연장에서 음향기기들이 비에 젖고 관객들은 환불을 요구했다. 하지만 폭우 속에서도 열정적인 공연을 이어가는 뮤지션의 모습에 조금씩 여론이 돌아왔다. 인 감독과 스태프들도 묵묵히 견뎠다. 심지어 세 번째 행사까지는 월급도 제대로 못 받았지만 각자 사비를 털어가며 일했다.

그렇게 열 번의 축제를 치르며 자라섬국제재즈페스티벌은 몰라볼 만치 성장했다. 충실한 재즈 중심의 공연 프로그램과 꾸준한 먹거리 개발, 넉넉한 화장실 및 편의시설 등에서 강점을 보였고 관객은 매년 20%씩 꾸준히 늘어 지난해만 27만명, 누적기준 140만명이 행사에 다녀갔다. 문화체육관광부가 지정하는 '2014년 대한민국 최우수 축제'에도 선정됐다. 기업 후원도 LIG화재는 이미 8년째이고 롯데멤버스(6년), 다음커뮤니케이션(5년)도 장기간 스폰서로 나서고 있다. 전체 축제 예산 20억여원 중 35%에 달하는 규모다.

페스티벌이 궤도에 오르면서 인 감독은 다양한 시험을 하고 있다. 신인 뮤지션을 대상으로 '재즈콩쿨'을 열어 우승자에게는 다음해 핵심 공연 첫 순서를 부여한다. '크리에이티브뮤직캠프'에서는 해외 유명 뮤지션들이 이들을 무료로 가르쳐준다. 또 다른 지역을 방문해 '찾아가는 자라섬 재즈' 공연도 연다. 행사장 인근 마을 담벼락에 '재즈 벽화'를 그려넣는 것도 시작했다. 그는 아직도 더 할 일이 많다고 생각한다. '재즈'의 힘을 믿는 것이다.



"재즈에는 묘한 매력이 있죠. 재즈는 처음 만난 사람들을 서로 무장해제시키고 쉽게 친구로 만드는 힘이 있습니다. 자라섬에 찾아온 100만명에게 좋은 기억이 있다면 그게 '재즈' 브랜드에 힘을 실어줄 겁니다. 전남 함평의 나비축제와 '나비' 브랜드 쌀을 보세요. 지역도 매양 하던 것 말고 특화된 브랜드가 필요해요. 재즈가 그 역할을 할 겁니다."

그래서 나온 게 '재즈막걸리'고 '자라섬 뱅쇼(뜨거운 와인)'다. 축제 티셔츠나 모자 등 패션 제품도 좋지만 지역 농산물에도 '재즈'를 입히면 훨씬 큰 효과가 있을 것이라고 믿는다. 아예 가평에 음악대학을 만드는 것도 보고 싶다.

자라섬국제재즈페스티벌은 올해도 10월3~5일에 열린다. 콘셉트는 여전히 자연, 가족, 휴식 그리고 음악이다. 차이가 있다면 프로그램 주제국이 노르웨이라는 점. 좀처럼 국내에서 접하기 힘든 노르웨이 재즈뮤지션 4팀이 공연을 펼친다. 그는 노르웨이 재즈의 특징이 '커팅에지(최첨단)'라고 귀띔했다.

그런 그가 좋아하는 아티스트는? 대뜸 세계적인 재즈 보컬리스트이자 아내인 나윤선을 말한다. 기자의 면박에 꽤 고민하더니 마일스 데이비스를, 다시 스웨덴의 '에스비에른 스벤손 트리오'를 꼽는다. 수년 전 사고로 유명을 달리했지만 2004년 1회 페스티벌을 포함해 몇 번이나 내한한 혁신적인 스타일의 팀이라고 강조한다. 그리고 또 한 명. 집시기타로 유명한 뮤지션 비렐리 라그렌을 들었다. 앨범 중 뭘 들어도 기대 이상일 거라며.

He is…

△1965년 충남 당진군 △1984년 서울 배명고 △1989년 고려대 영어영문과 △1998~2001년 서울 대학로 딸기극장 운영 △2004년~ 자라섬국제재즈페스티벌 예술감독 △2011년~ 환경부 녹색생활 홍보대사 △2012년~ 호원대 공연미디어학부 교수 △2013년 제10회 한국대중음악상 선정위원회 특별상 △2014년 문화다움기획상

■ 에세이집 '청춘은 찌글찌글한 축제다' 출간

지자체 소극장 활성화해 문화 '창작발전소'로 만들어야

예술인·국악 활성화 정책적 지원을


지난 15일 출간된 인재진 자라섬국제재즈페스티벌 총감독의 에세이집 '청춘은 찌글찌글한 축제다'에는 그가 먼 길을 돌아 현재의 위치에 이르기까지 '찌글찌글'했던 시간들이 가득 담겨 있다. 재즈음악에 대한 애정과 후배 공연기획자들에 대한 충고 역시 마찬가지다. 더불어 그는 국내 재즈음악계의 발전을 위한 제언도 여러 가지 내놓았다. 대표적인 것이 지역자치단체가 보유한 소극장을 활성화해 '창작발전소'를 만들어야 한다는 것. 이를테면 용산구민회관 소극장은 재즈로 유명해지고 서대문구는 록, 성북구는 국악, 강남은 현대음악 등으로 특화하면 좋겠다는 얘기다.

인 감독은 "2억~3억원 정도의 예산과 안정적인 공간이면 충분하다. 중요한 건 그 장르와 트렌드에 아주 정통한 전문기획자를 책임자로 앉혀야 한다는 점"이라며 "공무원으로는 쉽지 않다. 이 정도 조건이면 꽤 멋지게 일할 사람이 많다"고 지적했다.

또 프랑스·독일·룩셈부르크·네덜란드 등의 예술인 복지제도 역시 강조했다. 프랑스는 공연·영상 분야 비정규직 예술인을 위한 실업급여제도인 '앵테르미탕'을, 독일은 예술가를 위한 사회보험제도(KSK)를 운영하고 있다. 룩셈부르크와 네덜란드는 예술인을 위한 최저생활보장 기금을 조성하고 있다. 그는 "우리나라에도 예술인복지재단이 근래에 생겨 그나마 개선되고는 있다. 지원대상 선정 등 시행착오를 겪을 수밖에 없지만 좋은 예술가를 지원하는 제도는 문화예술 발전을 위해 필수적이다. 물론 문화계 시장이 더 커지고 자체적으로 재투자·선순환되는 구조가 되면 가장 좋겠지만 아직은 어렵다"고 말했다.

점차 일반의 관심에서 멀어지고 있는 국악에 대한 아쉬움도 감추지 않았다. "국악이 대중과 유리되는 느낌이 있습니다. 국악은 굉장히 독특하고 많은 이야기를 가진 장르입니다. 국악을 전통 중심으로 강화해 기본을 단단히 하는 것만큼이나 새로운 시도를 통해 '한국형 월드뮤직'으로 해외에 널리 알려야 합니다. 이를 기획할 전문가가 많지 않다는 점이 문제인데 이는 정책적인 뒷받침이 필요합니다."

·사진=이호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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