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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지 몰린 선진국 중앙은행

점점 커지는 포워드 가이던스 회의론

기준금리 인상 전제조건… 실업률·인플레이션만 집중

"현실과 동떨어져" 비판 커져

미국·영국 등 선진국 중앙은행들이 궁지에 몰리고 있다. 이들 중앙은행이 최근 수년간 경기부양 수단으로 사용해온 포워드 가이던스(선제 안내)에 대한 회의론이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들 국가의 실업률은 기준금리 인상의 전제조건으로 내세운 목표치에 거의 도달한 상태다. 따라서 실업률만 본다면 기준금리 인상이 임박했지만 경기확장은 여전히 기대에 못 미치고 인플레이션도 잠잠해 금리를 올릴 수 없는 상황이다. 따라서 중앙은행들은 포워드 가이던스를 수정 또는 폐기해야 하는 딜레마에 빠져 있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지난해 초 스탠리 피셔 연방준비제도(Fed·연준) 부의장이 재닛 옐런 연준 의장 등이 주도한 장기간의 초저금리 정책 예고에 대해 "연준이 앞으로 어떤 정책을 내놓을지 너무 정확히 예측하려 해서는 안 된다. 그것은 누구나 모르는 일"이라며 경고한 바 있다.

피셔의 경고는 이미 영국에서 현실화하고 있다. 12일(현지시간) 마크 카니 영국중앙은행(BOE) 총재는 "올해 봄에는 실업률이 금리인상 목표치인 7%에 도달할 것"이라며 "더 이상 실업률과 통화정책 방향을 연계시키지 않겠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오는 2015년 2·4분기까지 금리를 인상하지 않을 것이라는 시장의 전망은 인플레이션율을 2%까지 끌어올리려는 통화정책과 부합한다"고 밝혀 앞으로 1년 이상 기준금리를 유지하겠다고 시사했다.

대신 그는 기업 체감경기, 노동시간 등 앞으로 3년간 영국 경제의 잠재능력 정상화 여부를 측정할 수 있는 18개 지표를 금리인상의 새 잣대로 제시했다. 실업률과 인플레이션에만 집중한 기존의 포워드 가이던스가 현실과 동떨어져 있다는 사실을 자인한 것이다.

카니 총재는 "포워드 가이던스 2단계"라고 설명했지만 전문가들의 반응은 싸늘하다. 로이터는 이날 "기준이 너무 많아 앞으로 BOE의 행보를 예측하기 어려워졌다"며 "통화정책이 포워드 가이던스 도입 이전으로 되돌아갔다"고 비판했다.



사정은 미 연준도 마찬가지다. 미국의 인플레이션은 정책금리 인상 기준점인 2.0%에 한참 못 미치는 반면 지난 1월 실업률은 6.6%로 목표치인 6.5%에 근접했다. 이 때문에 연준도 지난해 12월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에서 실업률이 6.5%까지 떨어진 한참 뒤(well past the time)에도 금리를 올리지 않겠다며 포워드 가이던스를 다소 수정한 바 있다. 나아가 연준 내부에서는 실업률 목표치를 6.0% 정도로 내려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문제는 포워드 가이던스를 자주 고쳤다가는 시장과의 소통이 복잡해지고 중앙은행에 대한 신뢰도 추락하면서 시장 혼란만 증폭시킬 수 있다는 점이다. 젭 헨살링 미 하원 금융서비스위원장은 11일 옐런 의장 청문회에서 "포워드 가이던스를 계속 수선해 쓰면 금융시장에 불안감과 불확실성만 낳을 것"이라고 비판한 바 있다.

월스트리트저널(WSJ)도 "지금은 시장이 연준을 믿지만 어느 순간 신뢰가 떨어지면 시장 영향력도 순식간에 상실할 것"이라고 전했다. 이는 연준에 악몽과도 같은 시나리오다. 현재 연준은 제로금리·양적완화 등의 카드를 다 써버려 남은 경기부양 수단은 사실상 공포탄이나 말장난에 불과한 포워드 가이던스밖에 없기 때문이다.

더구나 앞으로 실업률이 목표치인 6.5%에 도달하면 옐런 의장 역시 더 큰 시험대에 오를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최근 "앞으로 옐런 의장은 모호한 기준으로 시장의 외면을 당하느냐, 아니면 포워드 가이드던스를 새로 만드느냐 하는 골치 아픈 선택에 직면할 것"이라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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