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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는 지난달 25일 기초연금 도입 방안 발표 당시 국민연금 보험료율(현재 평균소득의 9%) 인상을 전혀 검토하고 있지 않다고 밝혔다. 5년마다 열리는 국민연금제도발전위원회는 지난 8월 요율 동결안과 인상안 두 가지를 함께 제시했지만 정부가 최종 입장을 동결로 굳힌 셈이다. 요율 동결에 찬성하는 측은 당분간 기금이 계속 쌓여가므로 인상논의는 뒤로 미루고 보험 사각지대 해소와 고소득자 보험료 확대 징수를 위한 제도 개선을 주장한다. 반대 측은 조속히 보험료를 올려 가입자 신뢰와 재정건전성을 확보해 미래 세대의 부담을 줄여야 한다는 입장이다. 양측의 견해를 싣는다.
■ 찬성 김진수 연세대 사회복지대학원 교수
퇴직연금 감안하면 부담여력 한계
소득상한선 올리는 것이 더 현실적
정부가 기초연금안을 내놓으면서 국민연금 보험료 인상은 없다는 내용을 포함시킨 것은 '급한 불'을 끄겠다는 의지로 보인다. 기초연금이 국민연금과 연계돼 국민연금 장기 가입자가 불리하다는 인식이 팽배한 상황에서 보험료 인상까지 거론되면 불만이 가중돼 가입거부 사태가 날 것을 우려한 것이다.
전문가의 예측에 따르면 국민연금은 2043년 재정적자, 2060년에 기금고갈이 발생할 것으로 전망된다. 따라서 기초연금 논란과 별개로 국민연금 재정 안정은 꼭 해결해야 할 중요한 정책이지만 지금으로서는 보험료 동결이 바람직하다.
대부분의 선진국은 노후 보장을 위한 소득 부담의 마지노선을 20% 안팎으로 보고 있다. 현 국민연금 보험료율이 9%임을 감안하면 여유가 있어 보인다. 하지만 요율이 8.3% 정도인 퇴직연금이 급속히 확산되고 있는 상황을 고려하면 보험료율은 17.3%에 이른다. 이미 우리나라의 노후 보장을 위한 소득 부담은 20% 한계선에 육박해 있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국민연금 보험료율을 올리면 강한 국민적 저항에 부딪칠 수밖에 없다.
국민연금 재정 안정의 방법이 보험료율 인상밖에 없다는 주장도 언뜻 보면 당연한 것 같지만 너무 단순하고 초보적인 논리다. 연금제도가 그리도 간단했다면 수많은 국가들이 오랜 세월 제도 정착과 제도 안정화에 노력을 투입했을 리 없을 것이다. 현실은 재정안정을 위해 너무도 다양한 가능성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재정수입을 보험료율 인상 없이 확보하는 방법 중 하나가 보험료 부과대상 소득 상한선을 올리는 방안이다. 현재 국민연금은 부과대상 소득이 월 400만원 정도로 상한선이 설정돼 있다. 한 달에 400만원을 버는 사람은 소득의 9%인 36만원을 낸다. 그런데 소득이 800만원인 사람이나 1억원인 사람이나 소득이 400만원 넘는 사람의 보험료는 모두 동일하게 36만원이다. 그러다 보니 소득 400만원까지는 보험료율이 9%이지만 800만원인 사람의 실제 보험료율은 절반인 4.5 %이고 4,000만원인 사람의 보험료율은 0.9%에 불과하다. 국민연금의 보험료 부담은 고소득자가 오히려 적게 부담하는 역재분배 현상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
만일 보험료 부담 상한선을 400만원에서 800만원으로만 올려도 재정 수입은 보험료를 9%에서 12%로 상향 조정하는 것과 동일한 효과가 발생한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떤 선택을 해야 할까. 국민의 기초 보장을 위해서 400만원 이하 계층의 보험료를 인상하기보다는 400만원 이상 소득계층의 부담을 모두 형평성 있게 9%로 올리는 것이 정당하다.
물론 고소득자에게 부담을 늘리면 연금으로 받는 돈도 급격히 올라간다는 주장이 제기될 수 있다. 이는 연금액 상한제 또는 연금액 계산을 완만하게 하는 소득재분배 정책을 활용해 해결할 수 있다. 그렇다고 고소득자가 손해만 보는 것은 아니다. 고소득자는 이미 퇴직연금에서 조세혜택을 받기 때문에 국민연금에서 저소득자에게 배려하면 전체적으로는 형평성이 확보된다.
정치가 사회복지를 선거에 이용하는 소위 사회복지의 정치 종속화 시대가 본격적으로 도래 했다. 하지만 지금 추세라면 이를 넘어서 정치가 사회복지에 발목이 잡히는 정치의 사회복지 종속화 현상이 나타날 것이다. 국민연금 보험료를 형평성 있게 부담하는 방향으로 개혁하는 것은 우리나라 사회복지가 정치가 아닌 국민의 지지를 받는 건전한 정책으로 해결되는 시스템으로 나아가는 시험대가 될 것이다.
■ 반대 윤석명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연금연구센터장
인상 시기 늦추면 재정 불안정 심화
국민 설득해 장기간 조금씩 올려야
국민연금 보험료 인상 필요성 및 시기에 대한 논란이 뜨겁다. 경기가 좋지 않아 국민 생활이 팍팍한 데, 왜 급하지도 않은 보험료 인상 카드를 꺼내냐는 것이다. 두 차례 연금개혁이 있었고 연금 수급연령도 65세로 연장해 2060년까지 별 문제없이 굴러갈 국민연금인지라 보험료 인상이 시급하지 않다고 한다. 국민연금 재정방식을 부과방식으로 바꾸는 방법도 있고 올릴 필요가 있으면 서서히 올리면 된다는 것이다.
말처럼 해결이 쉬울까. 2007년 4월 국민연금 보험료 인상안이 국회에서 표결에 붙여 졌다. 9%인 보험료를 10년에 걸쳐 12.9%까지 인상하는 안이 한 표 차이(찬성 123, 반대 124)로 부결됐다. 보험료 인상안이 부결된 후에는 3차 국민연금 재정계산에서 해결하면 된다고 했었다.
6년이 지나 실시된 2013년의 3차 재정계산 역시 보험료를 13% 이상 걷어야 재정 안정이 가능할 것으로 전망된다. 매년 4% 포인트 이상 적게 걷는 셈이다. 빠른 인구고령화 속도와 잠재성장률 하락 추세를 감안할 때 미래 국민연금의 주변 환경이 지금보다 나아질 가능성은 매우 낮다. 지금도 보험료 인상이 어렵다면서 여건이 악화될 미래에는 보험료 인상이 가능할 것이라는 논리 전개는 무리가 많아 보인다.
보험료 인상 대신 부과방식으로 전환해 부족한 재원은 세금으로 해결하면 된다는 주장도 무책임해 보인다. 세금으로 운영되는 기초연금 문제로 온 나라가 시끄러운 작금의 상황이 이를 대변한다. 재정방식을 부과방식으로 전환하면 9%인 보험료가 2060년 이후 22% 이상으로 13% 포인트 수직 상승해야 한다는 사실도 주목해야 한다. 보험료 4% 포인트 인상도 어려운 상황에서 하루아침에 보험료 13% 포인트 인상이 가능할까. 그 시점에 가면 국민연금만 문제가 될까. 기초연금은 어찌하고 건강보험ㆍ장기요양보험 등은 어찌할 것인가. 노인인구 비중 40% 시대에 필요할 전체 사회보장 비용을 종합적으로 평가해야만 하는 이유다.
연금재정 건전성을 소홀히 한 일본은 국민연금 보험료 납부율이 과거 88%에서 60% 이하로 급락했다. 젊은 층 보험료 납부율은 35% 선이다. 젊은 층의 보험료 납부율이 낮은 이유는 젊은 세대가 일본 연금제도의 앞날을 비관적으로 보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역시 2030세대로 대표되는 젊은 세대의 국민연금 불신이 높은 편이다. 평생 보험료만 내다 정작 연금 못 받는 것 아니냐는 불안감 때문이다. 은퇴 기간 동안 연금 받을 돈이 있게 만드는 것, 바로 그것이 젊은 세대의 국민연금 불신을 해소하는 지름길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세대 간 계약 원리의 국민연금이 제대로 작동하기 위해 보험료 인상이라는 정공법이 필요한 이유다.
지금 고통스럽다고 보험료 인상시기를 늦출수록 그만큼 장기적인 관점에서의 재정 불안정이 심해지고 이를 극복하기 위한 보험료 인상폭 또는 재정 투입이 커질 수밖에 없다는 점을 국민에게 알리며 동의를 얻어야 한다. 보험료를 올리더라도 일시에 13%까지 4% 포인트를 올리자는 것이 아니다. 약 10년에 걸쳐 4% 포인트 (매년 0.4% 포인트) 인상하는 장기 스케줄로 접근할 경우 국민설득이 상대적으로 용이할 것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최고라는 노인 빈곤율만 강조할 것이 아니라, OECD 회원국의 평균 보험료(15% 안팎)에 비해 매우 낮은 우리나라 국민연금의 보험료 수준이 공론화돼야만 하는 배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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