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년연장법이 국회를 통과하리라 예상된다. 찬반 양론이 갈리지만 대체로 환영하는 분위기가 우세하다. 57년생 필자는 금년에 57세다. 50대 베이비붐 세대(1955~1963년생)의 맏이에 해당한다. 어느덧 또래들은 퇴직했거나 언제 퇴직할지 기약할 수 없는 불안한 시간을 보내고 있다. 동기회 모임에 모습을 보이지 않거나 아예 소식조차 끊기는 경우가 늘어나고 있다. 요즘 주변 지인들의 자녀 결혼식과 부모 장례식에 참석하는 일이 일상화됐다. 한창 자녀 교육과 결혼, 부모 부양에 힘든 시기에 조기 퇴직한 지인들이 고통을 어떻게 감내해내는지 안타까울 따름이다. 60세 정년이 미리 시행됐더라면 훨씬 안정된 가정을 유지했을 것이고 자녀들도 좀 더 일찍 가정을 꾸리고 행복한 출발을 하지 않았을까.
근로자들은 평균 53세에 퇴직한다. 퇴직이 60세로 연장되면 국민연금을 받기까지의 보릿고개를 잘 넘길 수 있을 뿐 아니라 연금급여액도 증가된다. 직장 건강보험의 혜택을 계속 누릴 수 있고 실직 위험도 60세까지 보장된다. 반면에 기업은 인건비 부담이 크게 늘어날 뿐 아니라 생산성이 떨어질 것을 우려한다. 특히 청년층의 취업 기회를 빼앗는다는 젊은층의 반발도 만만치 않다. 이러한 우려에 대해 고령자의 숙련된 기술과 경험, 헝그리 정신은 생산성을 떨어뜨리지 않으리라는 반론과 함께 정년 연장이 청년 고용에 별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는 경험적 통계적 관측이 있다. 그러나 이러한 논의들은 평균적인 경향성을 논의할 뿐이다. 개별 기업의 상황에 들어가면 정년 연장이 결코 만만치 않은 문제들에 부닥치게 될 것이다. 노사 간 갈등과 기업의 저항이 걸림돌로 나타날 것이다. 좋은 제도이지만 정치적 갈등과 경제적 현실에 부닥쳐 좌절되거나 후퇴되는 경우를 종종 봐왔다.
정년 연장이 우리 사회에 미칠 사회적 논의도 필요하다. 정년 연장이 정치적 합의와 대중적 지지로 나타난 것은 정년 연장을 하지 않으면 한국 사회가 공멸할지 모른다는 '집단적 본능'에서 발로된 것인지도 모른다. 베이비붐 세대에 대한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의 조사를 보면 83%가 특별한 노후 준비가 돼 있지 않다. 6%의 적극적인 소수만이 창업을 희망한다. 조기에 퇴직하면 대부분이 노후에 별 대책이 없는 셈이다. 베이비붐 남성의 80%가 퇴직 후에 일자리를 희망하고 있어 가장으로서 중압감이 극심한 남성 중심의 인식을 엿보게 된다. 특히 교육 수준이 낮고 소득 수준도 낮은 경우에 일하겠다는 의지를 더 많이 보이고 있어 정년 연장은 곧 빈곤 근로층에 대한 복지 정책에 가깝다. 부모 부양에 대한 책임도 정부(30%)보다는 자신의 책임(52%)으로 여기고 있다. 여전히 국가에 대해 의존하지 않겠다는 의식이 강하다. 노후 생계도 정부 의존(38%)보다는 스스로 챙기려는 의지(50%)가 강하다. 따라서 정년 연장은 베이비붐 세대 스스로 자립하도록 도와주는 복지 대책이기도 하다. 자녀에 대한 부양 책임도 '결혼할 때까지'(42%)가 '학업을 마칠 때까지'(30%)와 '직장을 가질 때까지'(24%)보다 높아 가정에 대한 책임의식도 견고하다. 가족에 대한 책임감 강한 베이비붐 세대에 대한 정년 연장은 가장으로서의 자존감을 복원하고 가정을 건강하게 유지하는 길이다. 건강한 가정이 모여 건강한 사회를 이루고 나라가 부흥한다.
정년 연장의 경제적ㆍ사회적 이익을 아무리 논의하더라도 정년 연장은 사실상 기업에 달려 있다. 기업들이 60세 정년을 받아들일 수 있는 여건과 유인을 마련해줘야 한다. 60세 정년을 받아들여도 기업을 경영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줘야 한다. 손톱 밑의 가시를 빼주고 사회보험료를 지원하는 정책이 필요할 것이다. 그리고 고령자에 대한 교육 훈련 투자로 생산성을 유지시켜야 한다. 연공서열형 조직 운영과 임금 체계도 변화돼야 할 것이다. 정년 연장을 위해 모두가 조금씩 양보해 공멸이 아닌 공존의 행복한 사회를 이뤄내자.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