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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세계 금융시장을 뒤흔들고 있는 그리스 재정위기가 출구를 찾지 못하고 헤매는 가운데 그리스가 일부 부채의 상환을 포기하는 '선별적 디폴트(채무불이행)' 단계에 진입할 것이라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국제신용평가사인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의 존 체임버스 국가신용등급위원장은 24일 뉴욕에서 열린 블룸버그 국채 콘퍼런스에 참석해 "그리스가 국채교환프로그램(PSI) 협상을 통해 부채 재조정을 결정하면 신용등급을 선별적 디폴트(selective default)로 하향 조정할 수 있다"며 "올 상반기 안에 전면 지급불능 사태에 빠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말했다.
그리스의 국가부도를 막기 위해 동분서주하는 유럽연합(EU)이나 국제통화기금(IMF) 등과 달리 시장은 그리스 디폴트를 기정사실로 받아들이면서 오는 30일 EU 정상회의 때 새로운 출구전략이 제시될 수 있을지에 관심이 집중될 것으로 전망된다.
그리스의 운명을 손에 쥔 EU와 IMF의 최종 목표는 현재 3,500억유로인 그리스의 부채를 오는 2020년 국내총생산(GDP) 대비 120%까지 낮춰 지속 가능한 경제구조를 만드는 것이다. 대책이 없을 경우 그리스의 총부채는 같은 기간 GDP 대비 180%에 달할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문제는 2,000억유로에 달하는 채권을 보유한 민간채권단과 그리스 정부의 부채탕감 협상이 꼬이고 있다는 점이다. 민간채권단은 국채 액면가 대비 50% 이상의 손실을 감당하기 어렵다는 입장을 고수하는 반면 독일 등 유럽 주요 국가들은 채권단에 더 큰 희생을 요구하고 있다.
상황이 긴박하게 돌아가면서 유럽중앙은행(ECB)이 보유한 400억유로의 그리스 국채도 일부 탕감해야 한다는 압박이 거세지고 있다. 민간채권단뿐 아니라 ECB도 고통을 분담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 경우 채권단의 손실을 ECB가 일부 떠안는 셈이어서 PSI협상이 급물살을 탈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IMF가 나서 ECB에 이 같은 압력을 넣고 있다"며 "다만 이러한 채무탕감이 EU조약에 위배될 수 있어 ECB는 완강한 반대 의사를 보이고 있다"고 유로존 고위관계자를 인용해 이날 보도했다.
민간채권단이 끝내 손실확대를 거부할 경우 현재 1,300억유로인 그리스 2차 구제금융의 덩치를 키우는 방법도 대안으로 거론될 것으로 전망된다. 이 경우 '돈줄'인 유로안정화기구(ESM)의 가용자금을 현재 5,000억유로에서 더 키워야 하지만 독일 등의 반대가 거세 구체적인 협상이 이뤄질지는 미지수다.
이 같은 대책과 병행해 그리스가 빚을 줄일 수 있는 재정긴축에 대한 신뢰를 보여줘야 한다는 목소리도 힘을 얻고 있다. 볼프강 쇼이블레 독일 재무장관은 "4월 그리스 총선에서 누가 승리하든 약속한 긴축정책을 빠짐없이 이행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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