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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각] "그라치아 디 스타토"


정책의 실패는 이유 여하를 막론하고 여권의 실패다. 지난 금융위기 이후 대다수 주요국에서 정권교체가 이뤄진 이유다. 반면 우리나라에서는 이 무렵 보수정권이 재집권했다. 수년째 성장률ㆍ수출ㆍ소비ㆍ투자의 동반 부진이 이어지지만 여당 지지율은 야당의 두 배다. '민심의 바로미터'인 국내 재보궐선거도 여권 대신 야권을 심판했다.

최근 방한한 프란치스코 교황은 이 미스터리의 해답을 나직이 이야기해주는 것 같다. 78세의 교황은 지난 4박5일 동안 안타까운 눈물이 고인 이들을 먼저 만났다. 그는 가장 필요한 것을 직시해 이야기하고 소외된 자들을 먼저 껴안고 이해했다. 이 때문에 급진주의자라 해도 어색하지 않을 그의 존재감은 서울에서 따뜻하고 인자한 우리 시대의 성자로 읽혀졌다.

교황은 출생지 아르헨티나가 세계 10위의 경제대국에서 빈부격차의 심화 등으로 몰락하는 과정도 지켜봤다. 그가 방한 중 트위터에 올린 여덟 번의 한글 메시지에는 '세상을 바꿀 수 있도록 도와달라'는 기도와 젊은이들을 위한 세 번의 기도가 들어 있다.

부동산 거품 붕괴로 시작된 지난 금융위기 이후 전세계 주요국에서 집값 하락이 뒤이었다. 반면 전 보수정권은 '부동산 연착륙' 대신 집값을 붙든다며 총부채상환비율(DTI) 완화 등 사실상 대출을 부추겼다. 그 결과 도출된 천문학적 가계대출은 중산층 몰락과 소비급락의 주원인이다. 구직난에 내몰린 젊은이들은 인턴ㆍ비정규직화의 저임금 굴레에 갇혔다. 하지만 정책적 실기와 부작용을 적시하고 대안을 내놓는 '진보'란 없었다. 대신 그들은 무상급식 카드를 꺼냈다. 서울시장은 바꾸었을지 모르겠으나 정권교체는 불가능했다.



성장회복을 위해 수출보다 가계의 내수진작이 절실한 지금도 정부 대책은 여전히 수출기업 등 공급자에 집중된다. 하지만 외국처럼 가계, 젊은 층 등 수요자 중심의 내수회복 조건을 설파하는 정치인은 찾기 힘들다. 가진 자의 사교육이 일류대 진학으로 이어지며 계층 고착화가 가열되고 있지만 이를 적시해 비판하는 진보도 없다.

본시 보수란 '지금 이대로가 괜찮다', 진보는 '이대로는 안 된다'는 이들의 집합이다. 진보 위기의 원인도 이미 '배부른 진보'가 제 역할을 도외시한 채 '밥그릇 싸움'인 정쟁에만 몰두하는 데서 멀지 않은 것이다.

교황의 활력에 대해 묻자 교황청은 꼭 필요한 이들에게 감당할 능력이 주어진다는 뜻의 이탈리아어인 '그라치아 디 스타토(Grazia di stato)'라 답했다. 지금 우리에게도 이 어구가 필요한 것 같다. 그 같은 리더의 진정성만이 지친 민심을 위로하며 차기 정권을 약속할 수 있을 텐데 이 쉬운 해법도 듣는 이 없는 것 같아 답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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