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엔은 10일 긴급 안전보장이사회를 열어 시리아 사태 해법을 논의할 예정이었으나 러시아의 반발로 취소됐다. 러시아가 당초 자신들이 요구했던 회의를 연기하자고 나선 것은 회의에 앞서 프랑스가 제출한 결의안 때문이다. 프랑스는 시리아 정부의 화학무기 프로그램을 국제 감시하에 두고 이를 이행하지 않을 경우 군사제재에 나서자고 제안했다. 이는 미국과 영국의 입장을 그대로 반영한 것이다.
하지만 러시아는 시리아의 화학무기를 국제사회의 통제하에 두자고 하면서도 사후 군사개입에는 반대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회의가 무산된 뒤 성명을 통해 "어떤 경우에도 미국 등 서방의 군사개입은 배제돼야 한다"며 강경한 입장을 보였다.
반면 미국은 러시아의 중재안을 긍정적으로 평가하면서도 시리아 우방국인 러시아가 바샤르 알아사드 정권을 위해 시간을 벌어주려는 게 아니냐는 의심의 눈초리를 거두지 않고 있다. 또 시리아가 약속대로 화학무기를 폐기할지에 대해서도 회의적이다. 과거 북한처럼 겉으로는 대화를 지속하면서 속으로 화학무기를 은폐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이날 버락 오바마 미 대통령은 시리아 사태 관련 대국민 연설에서 "러시아 중재안의 성공 여부를 예상하기에는 아직 이르다"며 "국제사회의 합의는 알아사드 정권이 화학무기 포기 약속을 지키도록 강제하는 방식으로 이뤄져야 한다"고 밝혔다. 그는 특히 "외교적 방안이 실패할 때를 대비해 군사개입을 위한 준비태세를 유지하고 있다"고 말했다. 척 헤이글 국방장관도 이날 하원 군사위원회 청문회에서 "외교적 옵션의 성공 가능성을 높이려면 미국의 실질적인 군사행동 위협은 계속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처럼 '사후 군사개입' 여부를 놓고 미국과 러시아가 정면충돌한 가운데 12일 존 케리 미국 국무장관과 세르게이 라브로프 러시아 외무장관이 시리아 해법을 논의할 예정이어서 귀추가 주목된다. 이번 담판에서 양국이 구체적인 합의에 실패할 경우 미국은 의회 동의 등의 절차를 거쳐 공습에 들어갈 수도 있다.
또 중재안 제시로 국제사회에서 '평화 중재자'로 급부상한 러시아의 위상이 위축되는 한편 잠시 화해 모드를 보이던 미국ㆍ러시아 관계도 급격하게 얼어붙을 것으로 보인다. 이날 케리 장관은 "화학무기 제거를 위한 러시아의 중재안을 기다리고 있지만 그리 오래 기다리지는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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