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형 헤지펀드의 출범은 최근 들어 국내 금융산업에서 가장 두드러진 변화로 손꼽힌다. 금융시장의 선진화를 목적으로 한 자본시장법이 마련된 지 4년 만인 지난해 시행령이 만들어짐으로써 한국에서도 헤지펀드의 시대가 열렸다.
그러나 헤지펀드에 대한 이해 부족 탓인지 아니면 보신주의 때문인지, 지금 마련된 제도로는 자산운용시장 육성 및 한국 금융시장 선진화 등 제도도입 취지를 이루기 어려워 보인다.
현 규정상 운용자산 10조원 이상 운용사, 자기자본 1조원 이상 증권사 등 대형 금융기업만이 헤지펀드 시장에 진입할 수 있다. 이러한 외형 위주의 제한 및 규제는 헤지펀드 산업 내의 위험성도 줄이지 못하고 진입장벽만 높여 참신하고 전문성 있는 소규모 회사나 펀드매니저들의 시장참여의 길을 원천적으로 차단하고 있다. 따라서 금융시장의 기반이 되는 새로운 전문인력의 유입이나 양성을 기대하기 힘들다.
헤지펀드는 뮤추얼 펀드와 대조적 개념으로 발전돼 왔다. 공모형 뮤추얼 펀드는 투자방향, 정책 등 모든 것을 미리 공개하고 그 틀 안에서 운용해 일반 투자자들을 보호한다. 반면 틀에서 벗어난 운용은 할 수 없기 때문에 시장과 경제의 변화에 맞게 적절하게 대응할 수 있는 유연성이 떨어져 투자 수익률과 위험관리에 한계가 있다. 이런 점을 극복하기 위해 나온 투자 형태가 헤지펀드라 불리는 사모펀드이다. 사모펀드는 공모가 아니고 파트너십의 형태로서 투자하기 때문에 파트너들의 동의하에 제약 없이 자유롭게 투자전략, 위험관리 전략을 구사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헤지펀드 도입초기에는 롱(long), 숏(short) 헤지형 주식 투자펀드가 대세를 이뤘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투자대상이 채권ㆍ파생상품ㆍ원자재ㆍ외환 등으로 광범위하게 확대됐고, 절대수익률을 위한 적극적 투자전략으로 원래 헤지펀드의 목적인 헤지기능보다는 사모의 특성이 더 커졌다.
투자 풀을 만들어 투자하는 것은 비슷하지만 뮤추얼 펀드는 소매 판매를 하는 반면, 헤지펀드는 사모로서 소매판매가 제한돼 있고 위험을 감수할 수 있는 개인 투자자들이나 기관 투자가들을 대상으로 한다.
헤지펀드는 원래의 취지와 사모라는 특성상 제약 없이 자유로워야 잘 클 수 있다. 미국과 유럽의 헤지펀드 산업의 성공 요인도 여기에 있다. 능력 있는 펀드 매니저나 소규모 운영사가 벤처기업처럼 많이 생겨나 최소한의 규제가 존재하는 시장에서 적자 생존하며 오늘날의 규모로 커온 것이다. 만약 미국, 유럽에서 큰 대형 회사 위주로 규제를 했다면 지금 같은 자본시장을 갖지 못했을 것이다.
브릿지워터 어소시에이츠(Bridgewater Associate)라는 미국 헤지펀드 운용사를 예로 들자면 지금은 운용자산 1,200억달러 규모로 세계 1위이지만, 그 출발은 설립자인 레이 댈리오의 뉴욕 맨해튼 아파트였다. 세계경제와 투자시장을 보는 안목의 출중함으로 대형금융기관보다 나은 실적을 보여주면서 지난 30여년간 눈부시게 성장을 해온 것이다.
최근 자료에 의하면 지난 2008년 이후 가장 많은 헤지펀드들이 시장에서 청산되고 있다. 2008년에는 투자자들이 환매를 해 청산이 많았던 반면, 이번에는 헤지펀드 운용사들이 계속된 수익률 저조로 스스로 투자자들에게 투자금을 돌려주고 회사 문을 닫고 있다. 2011년 말 기준으로 헤지펀드 운용사의 약 67%가 '하이워터마크(high-water mark)'기준에 미달해 운용수익을 벌지 못했으며, 약 13%는 2007년 이후 아직 한 해도 운용수익을 받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세계 헤지펀드들이 이처럼 고전하고 있는 시기에 이제 막 걸음마를 뗀 한국형 헤지펀드가 과도한 규제 속에서 과연 제대로 산업으로 형성돼 금융시장의 선진화, 금융시장의 신성장 동력에 이바지할 수 있을지 회의적이다.
지금이라도 진입 장벽과 여러 제한 조건들을 과감하게 없애야 할 것이다. 제조업이나 다른 금융업과 달리 자산운용 산업은 외형보다는 능력과 실적에 더 직접 영향을 받는다. 그래서 다른 금융업과 달리 외형이 작더라도 실력 있는 전문가들이 저변을 넓히고 세계시장에서 경쟁할 수 있는 영역이다. 금융위기 이후 세계의 헤지펀드 운용사들이 고전하고 투자 패러다임이 바뀌고 있다. 헤지펀드 제도의 원래 취지에 맞게 하루빨리 자율화시켜 자산 운용시장의 세계진출 계기로 삼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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