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먹고사는 문제만큼 중요한 것이 없다."
75세의 연세에도 여전히 시골에서 농사를 짓고 계시는 어머니가 입버릇처럼 하시는 말씀이다. 한국전쟁이 터지며 초등학교 6학년을 중퇴하신 당신은 어려서부터 힘든 보릿고개 시절을 겪은 뒤 땅 한뙤기 없는 집에 시집와 시부모 모시고 5남매를 키워내셨다. 봄에 곡식을 한 가마 빌리면 가을에 두 가마로 갚아줘야 했던 시절이었으니 얼마나 먹고 살기가 절실했을까.
한평생 피땀 흘려 수십마지기 논과 밭을 일궈내신 어머니는 2년 전 폐암수술을 받은 뒤에도 농사를 계속하신다. 지금도 손에서 책과 신문을 놓지 않으시는 깨어 있는 분이기도 하다. "옛날에 '죽기 아니면 까무라치기'식으로 농사를 짓던 때와는 다르지 않느냐"는 게 당신의 말씀이다. 기자는 과거 나락을 베다 너무 허리가 아파 논두렁에 드러누워 엉엉 울었던 경험이 있다. 그러니 노모께서 힘든 농사일을 계속 하시는 것을 보면 안쓰럽기 그지 없다.
새삼스레 기자가 어머니 말씀을 꺼내는 것은 올 12월19일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우리 모두 '먹고사는 문제'에 대해 다시 한번 진지하게 생각해보자는 뜻에서다.
우리 주위를 둘러보면 고통 받는 청년ㆍ장년 실업자가 적지 않고 열악한 보육ㆍ양육 여건과 학교폭력ㆍ사교육비 부담으로 허리가 휘는 중년층을 많이 볼 수 있다. 지하철에서 무가지 쟁탈전을 벌이는 노인들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지난 1997년 말 외환위기와 2008년 9월 글로벌 금융위기를 겪으며 우리 사회는 양극화가 심화되며 '양육강식의 정글사회'라고 표현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가 됐다. 민생을 살리고 사회통합을 꾀하고 질 높은 성장을 지속해야 하는 과제가 주어진 것이다. "성장과 복지의 조화를 통한 선순환 구조 정착" 등 대선 후보들의 화두가 쏟아지고 있는 것을 보면 아직 우리 사회가 진정한 의미에서 '먹고사는 문제'를 해결하지 못했다는 것을 느끼게 된다. 지금도 굶어 죽고 있는 북녘 동포들을 보면 '먹고사는 문제'의 중요성은 말할 것도 없다.
그런데 우리 여야 정치권의 행태를 보면 국회를 열어 민생을 챙기기보다는 여전히 구태의연한 이념논쟁이나 고질병인 밥그릇 싸움에 더 매달리고 있으니 안타까울 뿐이다. 열심히 땀 흘린 뒤 가을철 황금물결을 이룬 들판을 거닐며 뿌듯해 하시던 어머니를 떠올리며 정치권의 반성을 촉구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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