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투자자금이 주요 선진국 채권 시장에서 일제히 빠져나와 유럽 증시와 원자재 시장으로 이동하고 있다. 금융권 일각에서는 디플레이션 우려로 움츠려온 투자자들이 유로존(유로화 사용 19개국) 리플레이션(통화 재팽창)에 따른 기대감으로 포트폴리오를 재조정하는 머니무브 현상이 본격화하는 게 아니냐는 조심스러운 분석까지 제기된다.
실제로 국제 채권 시장에서는 투자 안전처로 꼽히던 주요국들의 국채 수익률이 지난달 하순부터 줄줄이 상승세(가격 하락)를 탔다. 미국 10년 만기 국채 수익률은 지난달 30일(2.032%) 이후 계속 올라 이달 6일 2.243%까지 뛰었다. 10년 만기 독일 국채(분트) 수익률도 지난달 24일(0.153%) 이후 상승세를 이어오며 이달 6일 0.584%를 기록했다. 일본 국채 10년물 수익률 역시 4월24일 0.279%까지 하락한 후 반등해 7일 장중 0.423%선까지 회복했다.
이런 가운데 경기부진으로 위축됐던 원자재 시장에서는 모처럼 활기가 돌고 있다. 6일 로이터는 안전자산 채권에 대한 급매도와 그에 반비례해 급반등하는 원자재 가격은 디플레이션에 따른 주식 침체기(dog days)의 종료와 리플레이션 시절로 돌아가는 전조일 수 있다고 진단했다. 투자은행 크레디드스위스의 애널리스트인 크라스텔 아란다-하셀도 채권 투자와 관련해 "올해와 내년 유로존에서는 경제성장의 상방 리스크가 있다"며 "이런 관점에서 볼 때 제로 수준인 (그동안의 유로존) 채권 수익률의 하락은 경제상황과 부합하지 않는다"고 분석했다.
지난 3월17일 배럴당 47.06달러까지 떨어졌던 서부텍사스산원유(WTI) 가격은 6일 60.93달러까지 오르며 지난해 12월12일 이후 5개월여 만에 최고치로 마감했다. 브렌트유가 역시 이날 배럴당 66.77달러로 마감돼 지난해 12월10일 이후 가장 높은 수준을 기록했다. 구리 값도 5일 톤당 6,480달러까지 치솟으며 지난해 12월12일 이후 최고 수준을 나타냈다. 채권 시장에서 이탈한 자금이 주요 원자재 시장에서 매수세를 형성한 것이 최근 유가 및 구리 값 강세 요인 중 하나로 꼽히고 있다. 유가는 7일 소폭 약세로 돌아서기는 했지만 이는 미국 내 원유재고가 올 들어 처음 감소하면서 유전개발업자들의 석유채굴 작업이 다시 활기를 띨 것이라는 예상이 반영됐다는 것이 블룸버그의 진단이다.
특히 경기부진에도 불구하고 가라앉았던 중국의 원자재 수요가 최근 다시 기지개를 켜고 있어 가격에 긍정적인 요인으로 작용할 것으로 예상된다. 미국 경제방송 채널 CNBC는 최근 "광범위한 분야의 원자재에 대한 중국의 수요가 올해 들어 놀랍도록 강세를 보이고 있다"며 "원유의 경우 중국의 올해 1·4분기 수요가 7.7% 늘었는데 이는 지난 2년 새 가장 큰 폭의 증가세"라고 소개했다. 경기성장 속도가 저하되고 있는 상황에서도 중국의 원자재 매수 주문이 늘고 있는 것은 사회간접자본(SOC) 건설이 시진핑 국가 주석의 '뉴 실크로드' 구상 바람을 타고 호황을 누리고 있기 때문으로 풀이됐다. 투자은행 바클레이스도 올해 들어서만 총 1조달러에 상당하는 규모의 사회기반시설 건설사업 300건이 계획돼 있다며 이것이 원자재 시장을 불붙게 하는 주요 요인이라고 진단하고 있다.
유럽 주식시장은 7일 재닛 옐런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 의장의 경고성 발언 여파로 약세를 타긴 했으나 전일에는 반등했다. 유로스톡스지수는 지난 6일 3,558.03으로 마감돼 전일 대비 0.32%(11.47포인트) 상승했다. 이날 독일 닥스지수도 0.20%(22.47포인트) 뛴 1만1,350.00을 기록했으며 FTSE100지수도 0.09%(6.16포인트)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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