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8년 12월18일, 미국이 점령지 일본의 경제안정 9원칙을 발표한다. 골자는 긴축. 연간 128%에 이르는 물가상승에 대한 처방이다. 미국은 이듬해 2월 디트로이트 은행장 조셉 닷지(Dodge)를 보내 본격적인 긴축에 들어갔다. 경제안정 9원칙의 숨겨진 목적은 일본의 재건. ‘호전적인 일본’의 전쟁 능력을 제거하기 위해 농업국가로 바꾸겠다던 대일정책과 딴판이다. 소련과의 냉전 심화와 중국 대륙의 공산화로 일본의 역할도 농업국가형에서 산업국가형으로 변한 것이다. 경제안정 9원칙 중 특이한 대목은 수출총력전. 수출용 자재 배급 효율화를 명시한 데 이어 닷지는 엔화 환율을 1달러당 360엔으로 고정시켰다. 일본정부까지 적정환율은 330엔대라고 생각할 무렵 미국의 ‘엔저’ 용인에는 수출로 일본의 힘을 길러주겠다는 의도가 담겨 있다. 닷지라인, 즉 초긴축정책은 효과가 있었다. 세자릿수였던 물가상승률이 1949년 두자릿수대로 떨어지고 1950년에는 한자릿수로 내려앉았다. 부작용도 따랐다. 긴축기조와 대출중단으로 기업의 자금난이 심화하고 철도노동자 등이 직업을 잃었다. 인플레를 지나 디플레현상이 발생하고 ‘안정공황(安定恐慌)’에 빠졌다는 비판도 나왔다. 위기의 일본을 구해준 것은 한국전쟁. 전쟁 특수로 고용이 늘고 수출이 급증했다. 경제안정 9원칙과 닷지 라인으로 고통스런 구조조정을 겪고 내실을 다진 일본경제는 한국전쟁 특수를 기반으로 고도성장가도에 들어섰다. 한국의 사정은 정반대다. 이승만 정권은 미국의 대일경제정책을 모방해 1950년 2월 ‘경제안정 15원칙’을 발표하며 안정적 성장을 도모했으나 허사였다. 한국전쟁 탓이다. ‘경제안정’에도 한국과 일본의 명암이 엇갈린다. 지금도 비슷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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