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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경제소사/ 4월 7일] <1664> 프랜시스 드렉셀


금융제국 JP 모건과 드렉셀대, 수많은 흑인과 인디언을 구한 미국의 성녀(聖女) 캐서린. 서로 연관이 없어 보이지만 이들은 프랜시스 드렉셀(Francis M Drexel)이라는 공통분모를 갖고 있다. 1792년 4월7일 오스트리아 포어알베르크에서 태어나 1863년 71세로 사망한 그의 인생 전반부는 예술과 도피ㆍ방랑. 11세부터 6년간 이탈리아에서 그림을 배우던 그는 군에 가기 싫어 스위스와 프랑스에서 3년을 숨어 지냈다. 28세 때 미국행 배에 오른 것도 징집을 피해서다. 미국 도착 후에도 남미를 떠돌며 중남미 해방의 영웅 시몬 볼리바르의 초상화를 포함해 붓으로 돈을 모은 그는 30대 중반부터 방랑을 접고 장사에 나섰다. 취급 품목은 돈. 다른 주의 은행권을 싸게 사들이는 방법으로 성장한 드렉셀사는 그의 사망 무렵, 미국 랭킹 2위의 투자은행으로 커졌다. 드렉셀의 유산은 세 가지 향방으로 쓰였다. 첫째가 교육사업. 큰아들이 동부의 명문 드렉셀대를 세웠다. 두번째는 은행사업 확장. 셋째 아들이 승계한 은행업은 해외에서도 승승장구하던 가운데 1871년 모건은행과 합병해 '드렉셀모건은행'으로 다시 태어났다. 한때 세계경제를 쥐락펴락한 모건금융그룹의 전신이 바로 드렉셀모건은행이다. 세번째는 자선사업. 드렉셀의 손녀인 캐서린 드렉셀(Katharine Drexel)은 수녀원에 들어가 98세로 죽을 때(1955년)까지 2,000만 달러가 넘은 돈을 흑인과 인디언을 위한 학교와 교회를 짓는 데 바쳤다. 2000년 가톨릭 성인 반열에 오른 캐서린은 아직도 헌신의 표상으로 존경 받고 있다. 거대 금융회사와 자선, 둘 중 어느 것이 사람들의 뇌리에 오래 남을까. 드렉셀 집안의 사례가 답을 대신 말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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