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버트 번스(Robert Burns). 영국 시인이다. 우리와도 인연이 깊다. 졸업식장에서 울리는 ‘석별의 정(Auld Lang Syne)’을 지은 주인공이니까. 민요가락에 시어(詩語)을 입힌 ‘올드 랭 사인’의 음률은 한동안 애국가의 곡조로도 쓰였다. 스코틀랜드에서 번스의 위치는 더욱 확고하다. 국민시인으로서 추앙받는 그의 생일인 1월25일(생년 1759년)이면 대규모 축제가 열린다. 잉글랜드풍과 달리 스코틀랜드풍의 소박하고 순수한 감정을 노래했기에 문화적 우상(icon)으로도 손꼽힌다. 가난한 농가에서 태어나 배운 것은 없었지만 스스로 전통가요와 시를 익힌 그는 잉글랜드에서도 필명을 날리며 스코틀랜드 사람들의 자존심을 세워줬다. 잉글랜드와 합병(1707년)에 반대하는 저항이 완전 실패(1745년)한 후 정치적 좌절감에 빠져 있던 사람들은 스코틀랜드 방언으로 쓰여진 번스의 시와 노래가 영국 전역에서 불리는 데 문화적 자긍심을 만끽했다. 때문에 번스는 정치 이외의 분야만큼은 잉글랜드를 앞서겠다는 스코틀랜드 계몽주의자 그룹의 일원으로 분류된다. 애덤 스미스 등을 포함한 이들 그룹은 ‘브리튼’이라는 기치 아래 잉글랜드 출신보다 대영제국의 발전에 더 기여한 사람들로 꼽힌다. 창작 이외에 짭짤한 수입을 보장하는 간접세 징수원이라는 직업을 유지하기 위해 도중에 프랑스혁명에 대한 공식 지지를 포기했지만 번스는 인간의 존엄과 평등을 부르짖은 인도주의자였다. 차별 없는 세상을 꿈꾼 번스의 소망이 담긴 시 ‘아무리 그래도(A Man’s a Man for a’ that)’의 한 구절이 귓가를 맴돈다. (…아무리 그래도, 아무리 그래도/그날은 다가오네, 아무리 그래 봐도/온 세상의 모든 사람과 사람이/아무래도 결국은 형제가 될 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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