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우디아라비아는 지난 25일(현지시간) 2015년도 정부 예산안을 1,450억리얄(약 386억달러) 적자로 편성했다. 내년도 재정수입이 석유수출 수입감소 등의 여파로 올해 대비 31.6% 줄어든 7,150억리얄(약 1,907억달러)로, 재정지출은 8,600억리얄(약 2,293억달러)로 설정됐다. 사우디 정부가 예산안을 적자로 짠 것은 유가폭락 충격을 받았던 2009년 이후 처음이다.
쿠웨이트 정부도 내년 예산안을 28억쿠웨이트디나르(약 96억달러) 적자로 편성했다. 올해에 이어 2년 연속 적자살림을 하겠다는 것이다. 재정지출이 전년 대비 18% 줄어 190억쿠웨이트디나르(약 649억 달러)로, 재정수입은 감소폭(19.3%)이 더 커 162억쿠웨이트디나르(553억달러)로 잡았다.
오만 정부 역시 내년까지 2년 연속 적자살림을 펼 것으로 전망됐다. 오만은 당초 올해 예산안을 편성했을 당시 국제유가를 배럴당 85달러로 잡았음에도 18억오만리얄(약 47억달러) 적자를 기록할 것으로 전망했다.
이들 국가에서는 원유수입이 국가재정의 최고 90%를 차지하며 자국민 일자리의 80% 이상을 정부가 만들고 있다. 정부의 긴축재정이 해당 국민들에게는 임금인상 억제나 삭감, 고용감축 등으로 이어질 수 있는 것이다. 아울러 해당 국민들은 그동안 정부에서 받아오던 막대한 연료·교육·상하수도 관련 보조금 혜택이 줄어드는 상황을 겪을 수 있다. 유가하락이 단순히 정부 재무구조 악화 수준에서 끝나는 게 아니라 정권의 기반 약화까지도 초래할 수 있는 구조다.
하지만 유가약세를 주도하고 있는 사우디는 최대 3~5년간 저유가 국면을 견딜 수 있다고 장담하고 있다. 실제로 26일 이브라힘 알아사프 사우디 재무장관은 올해 10월 기준으로 자국 국부펀드가 투자를 통해 확보한 해외 자산의 가치가 7,330억달러에 달한다며 자신감을 내비치기도 했다. 그러나 중동 산유국 중에서는 경제체력이나 자국 내 정치사정이 여의치 못해 저유가를 장기간 견디기 어려운 곳들도 적지 않다. 내전을 겪고 있는 리비아가 대표 사례다. 리비아는 가뜩이나 저유가로 고전 중인데 자국 내 최대 원유비축고인 한 항구의 오일 저장탱크 다섯 곳이 반군의 공격 등으로 화재에 휩싸여 수십억달러어치의 손실을 본 것으로 추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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