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의 원자바오 총리가 5일 "개혁ㆍ개방을 하지 않으면 오직 죽음뿐이다"며 "특히 국내 경제의 발전을 가로막는 정치제도 개혁에 매진해야 한다"고 말했다. 20년 전 개혁ㆍ개방의 설계사 덩샤오핑이 100년의 개혁ㆍ개방을 역설했던 '남순강화(南巡講話)'의 무대, 광저우를 찾은 자리에서였다.
물론 당시의 덩샤오핑과 지금의 원자바오가 추구하는 변혁의 방점은 다르다. 원 총리는 유명한 남순강화를 빗대 자신의 개혁 의지를 강조하고 싶었던 것이다. 당시는 개방을 통한 경제발전이 초점이었다면 지금은 법률 위에서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고 있는 공산당 일당 독재의 정치체제를 개혁해야 한다는 것이 요체다.
지난 30년간 놀라운 경제성장을 통해 경제 규모는 미국을 위협하는 주요2개국(G2)으로 올라섰지만 만연한 부패, 부당한 공산당 권력 남용을 제어할 수 있는 법치 체제와 정치 인프라를 완성하지 못할 경우 인민과의 괴리로 인해 그동안 쌓았던 경제기적도 물거품이 될 것이라고 원 총리는 강조한다.
중국 최초의 민주주의 선거로 칭송되며 최근 세인의 이목을 끌었던 광둥성 시골마을 우칸촌 분규는 역설적으로 중국의 민주ㆍ법치 수준이 낙후됐다는 것을 보여주는 사건이다. 도시화 과정의 농촌 주민토지 접수에서 나타나는 공산당 관리의 부패와 권력남용을 적나라하게 드러냈다.
우칸촌 관리들이 주민 공동 소유 토지를 개발업체에 몰래 팔아먹고 수년간 7억위안(1,200억여원) 이상을 횡령한 사실이 발각된 것이다. 분노에 찬 주민들은 거리로 나섰다. 시위 주도자가 경찰에 의해 의문사하는 사태까지 발생한 끝에 정부의 양보를 얻어내며 주민들은 스스로 새로운 당 지도부를 세우는 선거의 기쁨을 누리게 됐다.
사실 중국은 지난 87년 국회 격인 전국인민대표대회에서 촌 단위의 직접 선거 시행을 결정한 바 있다. 하지만 공산당 일방의 선거후보 임명 등 부조리한 관행이 지속되며 무늬만 선거였던 게 현실이었다.
우칸촌 사건은 원 총리를 포함해 중국의 정치개혁 주창자들에게 한 줄기 희망의 빛으로 다가오고 있다. 원 총리는 5일 광둥성의 한 시골마을을 방문한 자리에서 "농민의 투표권과 직접선거가 보장돼야 한다"며 "선거는 법률에 따라 공개ㆍ공정ㆍ투명하게 실시돼 인민의 욕구를 담아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절대적 영향력을 행사했던 덩샤오핑과 달리 원 총리는 현재의 공산당 지도부 내에서 외로운 소수파다. 그가 매년의 전국인민대표대회 등 기회 있을 때마다 정치개혁을 강조하지만 정작 공산당 지도부는 이렇다 할 개혁 청사진을 내놓지 않고 있다.
그래서 상당수 진보파나 지식인들은 원 총리의 개혁발언은 식상하며 립서비스에 불과하다고 폄하하기도 한다. 공산당 기관지 인민일보의 자매지 환구시보는 사설을 통해 최근 우칸촌 사건을 민주주의의 발전으로 해석해서는 안 되며 촌 선거는 공산당 등 어떤 상위 조직의 개입도 없다고 강조했다. 현 체제를 유지하려는 공산당 기득권 세력이 온존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제어 받지 않는 절대 권력은 절대 부패한다. 중국 공산당 지도부는 그들이 그토록 강조하는 안정적 경제성장을 위해서라도 원 총리의 개혁발언과 우칸촌 사건의 의미를 곱씹어 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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