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른바 '피케티 신드롬'을 불러온 프랑스 경제학자 토마 피케티(44·사진)의 저서 '21세기 자본론'이 오류 논란에 휩싸였다.
파이낸셜타임스(FT)의 경제담당 에디터인 크리스 길스는 지난 24일(현지시간) 주말판에서 "피케티가 '21세기 자본론'에서 소득 불균형 심화라는 결론의 근거로 제시한 자료 여러 곳에서 문제가 발견됐다"고 비판했다. 피케티 파리경제대 교수는 이 책에서 지난 300년간의 유럽과 미국 경제지표·세금 통계를 분석해 '경제발전이 빈부격차 해소를 이끈다'는 주류 경제이론의 허구성을 실증적으로 입증해냈다.
577쪽에 달하는 방대한 분량이지만 3월 출간 이후 아마존에서 20만부 이상 팔렸고 폴 크루그먼 프린스턴대 교수 등에게 '올해 가장 중요한 경제학 서적'이라는 극찬을 받았다. 특히 그는 소득 불균등의 해결책으로 최상위 1% 부유층에게 최고 80%의 소득세율 부과, 글로벌 부유세 도입 등을 주장해 논쟁의 한복판에 섰다. 버락 오바마 미 대통령도 그를 백악관으로 초청해 소득 재분배 등에 관한 조언을 듣기도 했다.
하지만 FT는 "피케티가 온라인에 올린 연구 결과의 엑셀 자료를 분석한 결과 원천자료가 잘못 계산되거나 의도적으로 재구성됐다"며 "심지어 일부 숫자는 원천자료의 출처조차 없었다"고 밝혔다. 가령 아무런 근거도 없이 1970년 미 소득 상위 1%의 자산비중에 2%포인트를 더하고 1870년 영국 상위 1%의 자산비중에 같은 포인트를 더해 상위 10%의 자산비중을 계산했다는 것이다.
또 FT는 피케티가 인구규모가 전혀 다른 프랑스·영국·스웨덴에 가중치도 두지 않은 채 각각 분석한 뒤 유럽 전반의 소득 불균형이 심화됐다는 결론을 내렸다고 비판했다. FT는 "오류를 수정했더니 1970년대 이후 유럽에서는 소득격차가 확대되지 않았다"며 "여러 데이터 오류는 소득 불균형 심화라는 핵심 내용을 밑동부터 무너뜨리고 있다"고 강조했다.
이에 대해 피케티는 "부동산 세수 통계, 희귀 자산과 소득세, 주택 소유주의 심리상태 등 매우 다양하고 이질적인 원천자료를 활용했기 때문에 일부는 조정이 필요했다"고 반박했다. 그는 "역사적인 자료는 손질할 수 있으며 미래에도 그럴 것"이라며 "(소득 불균형 심화라는) 연구 결론이 (새로 나오는 자료에 의해) 달라지지는 않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현재 대다수 경제학자들은 "피케티가 일부 원천자료를 손질했더라도 오류로 볼 수 있는지는 논란의 여지가 있고 연구 핵심 내용까지 부정하는 것은 더 큰 비약"이라고 말한다. 경제학자인 저스틴 울퍼는 "FT의 지적 내용이 명백한 실수인지, 경제학자의 재량 사항인지 명확하지 않다"고 지적했다. 뉴욕타임스(NYT)는 "서로 다른 여러 국가에서 수천 개의 과거 자료를 인용하는 방대한 연구에서 일부 오류는 피할 수 없고 이해할 만하다"며 "FT의 지적이 피케티의 연구 결론에 큰 충격을 주지는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다만 이번 FT의 지적으로 피케티가 학문적 결함 논란에 휩싸였다는 점에서 어느 정도 상처가 불가피하다는 의견이 많다. 또 피케티를 못마땅하게 바라보는 신보수주의 경제학자들의 현미경 검증 아래 놓이게 되면서 논쟁도 가열될 것으로 보인다. 대표적 긴축론자인 하버드대의 카르멘 라인하트와 케네스 로고프 두 교수도 2010년 함께 쓴 논문이 결론을 도출하는 과정에서 자료를 잘못 분석한 것으로 뒤늦게 드러나 재정 확대론자인 크루그먼 교수 등과 입씨름을 벌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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