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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과 공간은 모든 사람에게 공평하게 주어지는 자연의 섭리지만, 동시에 누가 어떻게 해석하고 변주하느냐에 따라 다른 해석이 가능하기도 하다. 이런 가운데 국내외 현대작가들이 각각 절대적인 시간과 하늘ㆍ땅ㆍ바다라는 공간을 주제로 새롭게 해석하고 다양하게 변주한 전시들이 열려 주목을 끌고 있다.
경기도 용인시 백남준아트센터는 백남준의 시간 예술을 공유하는 '달의 변주곡'을 올해의 첫 기획전으로 내놓았다. 시간 개념을 독특하게 사유하거나 색다른 방식으로 접근하는 작가 7인의 작품을 모은 전시로, 오는 6월 29일까지 열린다. 모티브가 된 작품은 백남준의 '달은 가장 오래된 TV'. 1965년 뉴욕 보니노 갤러리에서 처음 선보인 이 작품은 초승달부터 보름달까지 달이 변하는 모습을 12대의 TV로 보여준다. 한 달이라는 시간을 한 순간에 집약시킨 이 작품은 공간뿐 아니라 시간적으로도 유목민이었던 작가의 생애를 드러낸다.
벨기에 작가 다비드 클라르바우트는 사진 속 정지된 시간을 다시 흐르게 하는 흥미로운 시도를 보여준다. '일터에서 돌아오다 폭우에 발이 묶인 (나이지리아 쉘 사) 정유 노동자'라는 작품에서 작가는 컴퓨터 프로그램을 이용해 사진 속 노동자들을 3D로 만든 뒤 그와 체형이 비슷한 사람들을 사진과 동일하게 만든 세트 안에서 포즈를 잡게 하고 여러 각도에서 동시에 촬영했다. 그리고 이렇게 얻어낸 사진을 다시 3D에 입혀 원본에 없었던 측면, 뒷면의 모습까지 모두 얻어냈다. 사진 속에서 멈췄던 시간이 영상 속에서 다시 살아나 당시 아프리카 노동자들이 다리 밑에서 느꼈을 지루한 시간 속으로 관객들을 끌어 당긴다. 일본 미디어 아티스트 구와쿠보 료타는 기계의 시간에 주목한다. 작가는 100엔숍에서 산 싸구려 물건들 예를 들어 바구니, 연필, 삼각자, 백열등 등을 바닥에 늘어놓은 뒤 그 사이로 레일을 깔고 LED 조명을 단 작은 기차가 달리도록 했다. 조명이 물건을 비출 때마다 벽에는 실제 물건 크기의 10배가 넘는 비대한 그림자가 생기는데 시계 초침이 헬리콥터 날개가 되고 파일 바인더가 교각이 되는 역동적인 장면이 펼쳐진다.
하늘과 땅, 그리고 바다의 이미지를 뒤집고 비틀어 공간에 대해 새롭게 인식하게 하는 특별한 전시도 선보였다. 아트선재센터, 이화익갤러리, 원앤제이갤러리, 옵시스아트, 갤러리인, 갤러리스케이프 등 북촌의 6개 갤러리가 뜻을 모아 오는 3월 23일까지 펼치는 '하늘 땅 바다'전이다. 호주 MAAP(Media Art Asia Pacific) 디렉터 킴 매이첸이 기획을 맡았으며 국내외 작가 15명의 작품을 북촌의 공간에 나눠 설치했다.
아트선재센터에는 푸른 바다와 하늘을 담은 작가 3명의 미디어영상이 한 공간에 설치돼 있다. 네덜란드 출신 얀 디베츠는 '수평선' 시리즈에서 가로의 수평선을 여러 각도로 촬영해 사선으로 전환시켰다. 김수자의 '보따리-알파 비치 나이지리아'는 하늘을 바다 위가 아닌 아래로, 수평선을 정반대 방향으로 전복시켜 노예선의 출발지였던 나이지리아 알파 비치의 뒤집힌 수평선을 통해 역사와 운명에 대한 공포를 드러냈다. 포르투갈 출신 호아오 바스코 파이바의 '강요된 공감'은 바다 위 부표의 이미지를 컴퓨터 프로그래밍으로 보정한 작업이다.
이화익갤러리의 전시작 중 로라 브린캣의 작품은 작가가 베를린의 폐쇄된 공항 활주로를 따라 지평선 끝까지 걷는 퍼포먼스를 담고 있다. 옵시스아트에 설치된 크레이크 월시의 일출과 일몰 영상은 96개의 선돌이 늘어선 호주에서 촬영했다. 순회전 형태로 진행되는 이번 전시는 오는 4∼7월에는 중국 상하이, 9∼11월에는 호주 브리즈번으로 자리를 옮겨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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