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증시는 8일(현지시간) 기분 좋은 상승세로 출발했다. 벤 버냉키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의장이 미국 경제에 대한 낙관론을 내놓자 증시는 이틀째 오름세를 보였다. 하지만 뉴욕증시는 오후 들어 하락세로 돌아섰다. '버냉키 효과'를 한방에 잠재운 악재는 BP파산설(說)이다. BP가 소송 비용 등을 감당하지 못해 파산한다는 이른바'텍사코 시나리오'가 고개를 들고 있다. 미국 역사상 최악의 원유유출사고를 일으킨 BP가 1987년 파산한 텍사코의 전철을 밟을 것이라는 분석이다. 텍사코는 석유회사 게티오일 인수를 가로챘다는 이유로 경쟁업체 펜조일이 제기한 소송에서 패하는 바람에 105억 달러의 배상금을 물게 되자 파산 보호를 신청했다. 텍사코는 결국 셰브론에 합병됐다. BP는 이날 "현금을 비롯해 모두 120억 달러의 유동자산을 확보한 만큼 위기를 수습할 수 있다"고 거듭 강조했지만 갈수록 확산되는 파산설을 잠재우진 못했다. BP의 파산설은 여러 경로에서 나왔다. 1차 진원지는 정치권이다. 미국 상하원 의원들은 "BP가 파산할 가능성이 있으니까 그 이전에 채권을 확보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43명의 여야 의원들은 이날 BP에 배당을 중지하고 광고 집행을 중단하라고 요구했다. 그 돈을 원유 유출 피해를 보상하는데 써야 한다는 주장이다. 스티브 코언 민주당 하원의원은 "BP가 파산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오바마 행정부는 BP를 법정관리에 맡기는 방안을 고려해야 할 것"이라고 촉구했다. 에너지 전문가들마저 파산 가능성을 들고 나왔다. 심지어 BP가 1개월 안에 파산할 것이라는 극단적 분석도 나올 정도다. 텍사스 소재 부티크(소규모 투자은행)인 사이먼앤코를 운영하는 매트 사이먼은 포천과의 인터뷰에서 "소송과 방제 비용으로 BP의 현금은 고갈될 것"이라며 "BP는 파산으로 향하고 있다"고 직격탄을 날렸다. 포천은 'BP는 파산석유회사(Bankrupt Petroleum)인가'라는 제목의 기사를 통해 "BP가 파산할 것이라는 두려움이 증시를 휘젓고 있다"고 전했다. 크레딧스위스는 멕시코만 원유 유출 사고에 따른 영향을 분석한 보고서에서 "BP는 방제비용으로 230억 달러를 부담해야 할 뿐 아니라 관광 및 수산업계 등에 대한 배상금으로 140억 달러를 지불해야 할 것"이라며 "이런 제반 비용이 400억 달러에 이를 수도 있다"고 밝혔다. 불안은 투매를 불러일으켰다. 헤지펀드들은 크레딧디폴트스왑(CDS)를 사놓고 파산 배팅에 나섰고 기관투자자들은 BP주식을 내다파는 데 급급했다. 이날 BP의 주가는 29.2달러로 전일보다 무려 16%나 떨어졌다. 지난 4월20일 사고 발생 후 50일 만에 주가는 반 토막으로 전락했다. 선물 시장에서는 소규모 투자로 큰 돈을 벌 수 있다는 의미로 BP옵션은 '로또'로 통한다고 블룸버그통신은 전했다. BP의 채권도 투기등급으로 전락했다. BP의 신용등급은 최고신용등급에서 2단계 아래인 Aa2(무디스기준)이지만 미 재무부 채권과의 금리격차(스프레드)는 투자부적격등급인 7.25%보다 높은 7.57%에 이른다. CDS프리미엄은 이날 387.6bp(bp=0.01%포인트)까지 올랐다. 이는 실제 신용등급에 비해 9단계 낮은 Ba2수준. BP의 CDS프리미엄은 금융 위기 이전에 40bp선, 위기 와중에도 100bp내외에서 움직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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