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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라파트 사망] '포스트 아라파트' 선두주자 압바스
입력2004-11-11 13:32:36
수정
2004.11.11 13:32:36
야세르 아라파트 팔레스타인 자치정부 수반의 사망으로 과도기간 실질 권력부서들을 통제하게 된 마흐무드 압바스(69)는 40여년간 아라파트의 오른팔이자 2인자로 상징적 지위를 지켜온 인물이다.
팔레스타인해방기구(PLO) 사무총장과 파타운동 부대표로 현재 권력의 중심에 가장 근접해 있는 그는 지난해 4월 자치정부 초대 총리로 화려하게 취임했다. 대(對)이스라엘 정책 등을 둘러싸고 아라파트와 불화를 빚은 그는 총리 재임 5개월도 채안돼 전격 사임했다.
총리 사임 후 공개석상에 거의 나타나지 않고 회합도 자제했지만 그의 정치무대복귀는 항상 시간문제로 여겨졌다. 압바스는 사임후 수개월간 아라파트와 말도 주고받지 않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지난달 압바스가 아라파트의 병상을 찾아 문안하면서 비로소 두사람은 화해했다.
아부 마젠이라는 별명으로 더 잘 알려진 그는 아라파트의 그늘에 가려 팔레스타인 내부에서는 대중적 인기나 카리스마가 떨어진다는 평을 받고있다. 그러나 아랍지도자들과 탄탄한 인맥을 쌓아오면서 자연스럽게 아라파트의 후계자로 거명돼왔다.
압바스 총리는 1993년 오슬로 평화협정을 탄생시킨 대이스라엘 평화협상의 주역으로 이스라엘과 평화공존을 적극 지지했다. 이스라엘과의 유혈 충돌을 가장 공개적으로 비판해 온 팔레스타인 지도자로도 유명하다. 이 때문에 이스라엘과 미국은 물론 아랍 지도자들도 그를 자치정부 초대 총리로 강력히 천거했다.
비록 단명 총리로 끝났지만 그가 복귀할 경우 평화회담이 탄력을 받게될 것이라는 기대가 크다.
압바스는 1935년 영국 위임통치를 받던 팔레스타인의 사페드에서 태어나 이집트에서 법학을 공부하고 모스크바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한 학구파 정치인이다. 1950년대 카타르 망명 시절 팔레스타인 대의명분을 설파해 PLO 핵심 동지들을 규합했고,아라파트 수반과 요르단, 레바논, 튀니지 등지에서 망명생활을 함께 하면서 1965년PLO 주류 정파인 파타운동을 결성했다.
압바스는 이스라엘-팔레스타인 협상이 본격화하기 전인 1970년대 유대사회의 좌파 및 평화주의자들과 대화를 주창했고, 특히 1993년 백악관에서 거행된 오슬로 평화협정 조인식에 아라파트 수반을 수행해 참석했다. 이때부터 그는 실용주의자로서또 오슬로 평화협정의 산파로서 국제적 인지도를 높이기 시작했다.
압바스 총리는 독자적인 정치기반이 없지만 내년으로 예정된 대선에서 파타운동의 단일 후보로 옹립될 가능성이 가장 큰 인물이다. 아라파트의 사망으로 그의 대권가도는 더욱 단축될 전망이다.
(카이로=연합뉴스) 정광훈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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