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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틴식 전술' 서구를 농락하다

스텔스 침공… 페이스 오프… 그림자 전쟁…

재래식 무기 앞세운 침략 대신

배후조종·정보·심리전 총동원



'스텔스 침공, 페이스오프, 그림자 전쟁'

서방 언론들이 우크라이나 사태를 조종하고 있는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전략을 일컫는 표현들이다. 재래식 무기를 앞세운 전통적 의미의 침략 대신 친러 세력을 배후 조종하거나 각종 정보·심리전 및 정보전을 총동원하고 있다는 의미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28일(현지시간) 러시아의 새로운 전쟁기술(Russia's new art of war)에 서구권이 쩔쩔매고 있다고 전했다.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에 따르면 1,000명 이상의 러시아군이 우크라이나 영토에 진입해 있지만 서방권은 이에 대한 적극적인 대응을 하지 못하는 상태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이날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와의 전화통화 후 열린 기자회견에서 "러시아가 그동안 의도적이고 반복적으로 우크라이나 영토를 침입(incursion)해왔다"며 "우크라이나 반군을 훈련하고 무장시키는 것은 물론 자금지원까지 하며 깊숙이 관여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서방국가들은 지난해 11월 우크라이나 사태 발생 이후 배후에 러시아가 있다고 주장해왔다.

반면 러시아는 전면부인으로 일관하고 있다. 푸틴 대통령은 최근 페트로 포로셴코 우크라이나 대통령과의 양자회담에서 "우크라이나 정부와 친러 반군 간의 휴전협상에 관여하지 않을 것"이라며 "우리가 나설 일이 아니다"라고 말한 바 있다. 자신을 전면에 내세우는 대신 친러 세력을 조종(페이스오프)해 서구권의 레이더망을 피하는(스텔스 침공) 그림자 전쟁이 우크라이나를 무대로 펼쳐지고 있는 셈이다.

특히 푸틴식 현대 전쟁은 친러 세력으로의 무기지원이나 군병력 투입 등 재래 방식을 넘어 폭넓은 정보기술(IT)전과 관련국과의 경제함수를 활용하는 보다 고차원적 전술을 구사하고 있다는 점에서 "나토 당국자들이 '하이브리드 전쟁(Hybrid War)'으로도 부른다"고 FT는 전했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흔들기는 이미 오래 전부터 계속돼왔다는 게 서구권의 시각이다. 대표적인 예는 지난 2010년 러시아가 개발한 컴퓨터 악성코드 '스네이크'의 침투다. 당시 스네이크는 수십 개의 우크라이나 외교채널 및 정부 시스템에 침입해 우크라이나의 비밀정보를 수집하는 도구로 활용됐다. 또 적어도 2008년 이후부터 러시아는 우크라이나의 가스 의존도를 지렛대로 삼아 정치인 및 정부 주요 관료들을 길들여왔다고 FT는 보도했다.



푸틴의 이 같은 전략은 옛 소련권의 동유럽을 포함해 유럽 전체에도 확대 적용되고 있다. 실제 3월 러시아는 리투아니아를 길들일 목적으로 발트해에서 가장 큰 항구도시인 클라이페다를 경유하는 모든 식료품에 대한 금수조치를 단행한 바 있다. 서구권의 대러 제재에 대한 맞불조치로 러시아가 실시한 농산물 금지로 관련 수출량이 많은 동유럽 국가들에도 비상이 걸린 상태다.

특히 아네르스 포그 라스무센 나토 사무총장의 6월 폭로는 유럽을 자기 손아귀에 움켜쥐기 위한 푸틴의 계산이 얼마나 광범위하고 치밀하게 진행돼왔는지를 단적으로 볼 수 있다. 당시 라스무센 총장은 러시아가 비밀리에 유럽권 환경단체에 금전지원을 하고 있다는 의혹을 제기했다. 현재 약 30%에 달하는 유럽의 대러 에너지 의존도를 유지·강화하려는 목적으로 셰일가스 기술 개발에 반대하는 환경단체에 돈을 대고 있다는 것이다.

푸틴의 전략은 '21세기 차르(제정 러시아 시대 황제)'로 불릴 정도의 권위주의적 정치행태, 관영언론을 통한 여론전 등을 등에 업고 국가 전체를 한몸처럼 동원하고 있다는 게 특징이다. 이에 반해 회원국이 28곳인 나토를 위시한 서구권의 방위전략은 국가별 이해관계 및 의견차 때문에 일사불란하게 대응하지 못하고 있다. 영국 싱크탱크 채텀하우스의 로빈 니블릿은 "러시아처럼 경제·정치·문화·사회적 방법을 총동원할 수 있는 국가에 대항할 수 있는 새로운 형태의 억지력을 찾아야 한다"고 말했다. 나토는 우크라이나의 요청으로 29일 회원국 및 우크라이나 대사가 참여하는 긴급회의를 개최해 대응방안을 논의하기로 했지만 효과적인 대책을 내놓기는 어려울 것으로 전망된다.

현재 서구권 당국자들은 러시아군의 우크라이나 영토진입을 놓고 '전쟁(war)' '침공(invasion)'이라는 표현 대신 오바마 대통령이 언급한 '침범'이라는 단어를 공식적으로 쓰고 있다. 푸틴의 전술이 모호하다는 이유도 있지만 이를 '전쟁'으로 공식 규정할 경우 서구권이 그토록 피하고 싶어하는 군사적 행동 수순을 밟아야 하는 부담이 있기 때문이라고 블룸버그통신은 보도했다. 정치컨설팅 업체 유라시아그룹의 이언 브레머 회장은 "러시아와 우크라이나는 주권국가들로서 전쟁을 하고 있으며 서구권은 이를 현실적으로 부인하는 게 매우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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