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자유주의에 대한 반발로 자유무역을 배격하고 보호무역을 하자는 내용이 중심을 이룬다. 선진국과 거래를 하면 결론적으로는 선진국에 잠식돼 경제가 종속되고 결국은 그들의 통제권 아래 들어간다고 주장한다. 다국적 기업은 미제의 첨병이므로 이들의 진출을 막아야 하며, 가진 소수를 위해 나머지 다수가 착취당한다는 지적도 빠지지 않는다. 요즘 이야기가 아니다. 이미 1960~1970년대 한바탕 휩쓸고 지나간 종속이론이다. 1970년대 초반까지 잘나가던 남미 경제가 위기를 맞아 휘청거리면서 좌파 성향의 학자들이 들고 나온 이론이다. 이들은 제2차 세계대전 후 수출주도형 성장론의 부활에 대항해 수입대체 공업화의 필연성과 이론적 정당성을 옹호하는 이론에서 출발했다. 그러나 우리는 종속이론의 결말을 잘 알고 있다. 1980년대에 이르러서 종속이론은 이를 들고 나온 학자들마저 더 이상 주장을 할 수 없어 사장됐으며, 수입대체 공업화의 길을 택한 대표적인 나라인 브라질은 국가 파산 위기를 겪는 등 오랜 기간 고초를 겪어야만 했다. 정치적ㆍ학문적 선동을 따른 대가치고는 국민에게 그 피해가 너무나 혹독했다. 역사는 반복된다고 했던가, 요즘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을 반대하는 주장을 보면 섬뜩한 생각마저 든다. 반대 주장 중에서 그나마 나름 논리를 갖춘 논거를 보면 종속이론과 닮은 점이 발견되기 때문이다. 한미 FTA 반대 세력은 대안 없는 반대를 위한 반대만 외치는 꼴이다. 이들은 자유무역의 반대편에는 '수입대체'의 길밖에 없다는 것을 알고 있기나 한 것일까. FTA 선점 실패로 인한 '시장 상실'은 우리를 사실상 '수입대체'형 경제라는 막다른 길로 내몰 것이다. 수출주도형 경제 모델의 연장선상에 있는 한미 FTA 체결은 선택의 문제가 아니다. 무역 의존도가 세계 최고 수준에 이른 한국 경제의 생사가 걸린 문제다. 세계 경제가 향후 몇 년간 침체기를 겪을 것으로 예고되고 내수 시장마저 정체돼 있는 상황에서 우리 경제가 활로를 찾기 위해선 무역을 통해 미국이라는 새롭고 거대한 '내수 시장'을 확보해야 한다. 절체절명의 순간이다. 1980년대 산업정책 전문가들 사이에서 유행한 문구, "오늘 무슨 일을 하는가가 미래에 어떤 일을 하게 될지, 그리고 어떤 결과를 거두게 될지를 결정한다"는 종속이론의 추억을 떠올리면 여전히 유효한 명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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