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07년 1월16일, 스코틀랜드 의회가 잉글랜드와의 합병을 골자로 한 통합법을 표결에 부쳤다. 결과는 69대41로 가결. 멜 깁슨이 주연한 영화 ‘브레이브 하트’에서 보듯이 잉글랜드와 앙숙이었던 스코틀랜드는 왜 합병을 스스로 결정했을까. 두 가지 이유에서다. 첫째는 국왕이 같았다는 점. 평생 독신으로 지낸 엘리자베스 1세가 후손을 남기지 못하고 사망한 1603년부터 방계 혈통인 스코틀랜드 국왕이 영국 왕으로 즉위한 순간부터 두 나라는 공화정 시기를 제외하고는 한 국왕에 의해 통치되며 이질감이 엷어졌다. 두번째는 경제위기. 파나마 지역에 대규모 식민지를 건설한다는 계획이 실패하며 경기침체에 빠졌다. 40만 파운드나 되는 해외채무에 시달리던 스코틀랜드는 결국 빚을 갚아주겠다는 잉글랜드와의 합병을 택했다. 나라를 잃은 스코틀랜드는 비탄에 잠겼을까. 그 반대다. 브리튼 왕국의 일원으로 발전을 이끌었다. 두 차례의 반란도 왕위승계에 대한 불만의 표출이지 독립운동은 아니었다. 높은 교육수준을 자랑했던 스코틀랜드는 무수한 인재를 쏟아냈다. 19세기 내내 영국 의사의 95%가 스코틀랜드 지역에서 배출됐다. 근대 경제학을 창시한 애덤 스미스와 시인 키츠, 셜록 홈스 시리즈의 작가 코난 도일이 모두 스코틀랜드 태생이다. 통합 당시 인구비율이 8대1 정도였지만 1775년 이후 인도에 파견된 영국 관리의 47%가 스코틀랜드인으로 채워졌다. ‘해가 지지 않는 대영제국’의 초석을 깔았던 통합법 통과 302주년. 1999년 스코틀랜드 의회 부활 이후 독립론이 거세지고 있다. 영국에서 벗어나야 보다 잘살 수 있다는 계산에서다. 1인당 국민소득도 스코틀랜드가 잉글랜드보다 다소 높다. 독립 여부는 2010년 국민투표로 결정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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