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는 약 20년간 교통정책을 연구하면서 철도의 역할과 사회적 필요성 등에 대해 끊임없이 생각해 보고 논문으로 이를 정리해 보았다. 그동안의 연구결과를 큰 흐름대로 정리해 보면 다음과 같다. 첫 번째로는 교통정책에 있어 도로위주에는 한계가 있으며 선진각국에서 철도가 새롭게 부활하고 있다는 것이다. 영국의 세계적인 교통학자인 데이비드 바니스터 옥스퍼드대 교수는 교통정책의 흐름을 4단계로 구분하였다. 초기는 도로 위주의 교통정책이 수립되고 2단계는 도로위주의 교통정책의 한계를 깨닫게 되고 3단계는 교통수요를 억제하고 철도 등 대량교통위주의 교통정책을 전개하며 마지막 단계에는 교통량 자체를 줄인다는 것이다. 유럽 각국은 환경문제해결을 주된 목표로 삼고 있고 교통정책은 이미 3단계에 와 있다. 일본의 경우도 2단계에서 3단계로 이전되고 있다. 우리나라는 현재 2단계에 머무르고 있어 이제 3단계로의 진입을 모색해야 하는 시점에 와 있다. 우리는 지난 2007년 기준으로 교통혼잡비용에 24조원을 지불해 전체 국내총생산(GDP)의 약 3%를 차지하고 있다. 세계 각국은 이미 지구 온난화 문제, 환경문제 등에 직면하면서 지속 가능한 교통수단으로 녹색성장이 가능한 철도를 선택해 이를 집중적으로 발전시키고 있다. 유럽의 통합교통망 30개 축에서 철도가 22개를 차지하고 있으며 프랑스는 현재의 고속철도망을 2025년까지 2배 늘리는 계획을 추진 중에 있다. 두 번째로는 우리나라는 철도가 발전하기 매우 적합한 곳이라는 것이다. 철도가 먼저 발전한 나라는 19세기 초 영국 등 유럽이지만 일본은 1964년 세계최초로 고속철도를 개통하였고 중국과 타이완도 최근에 고속철도를 개통했다. 특히 중국은 매년 1만km이상 철도를 건설하고 있다. 필자는 왜 동아시아가 유럽보다 철도가 발전하기 좋은 나라인가를 생각해 보았다. 동아시아는 철도가 가진 특성인 대량수송에 적합한 사회경제적 여건이 매우 적합하다. 그 이유는 인구밀도가 높고 경제권역이 지역적으로 편중돼 있는 지역이 바로 동아시아이기 때문이다. ㎢당 인구밀도는 프랑스 110명, 독일 232명에 비해 일본이 339명, 우리나라가 493명, 타이완이 636명으로 세계 최고 수준이다. 앞으로 이러한 흐름은 아시아에서 여건이 비슷한 인도와 베트남 등으로 확산될 것이며 이들 지역과의 철도연결은 머지않아 실현될 것이다. 2008년 자료에 의하면 일본의 경우 1일 89만명이 신칸센을 이용하고 있는 데 비해 30여년의 고속 역사를 가진 프랑스는 1일 약 29만명, 독일은 19만 명만이 이용하고 있다. 우리나라도 고속철도 개통 5년을 맞이하고 있는데 그동안 수요가 증가해 초창기 5만명에서 이제는 1일 10만명 이상이 이용하고 있다. 향후 인프라의 추가건설 등으로 수요는 더욱 늘어날 것으로 전망된다. 세 번째로는 철도의 사회경제적인 역할이 매우 크다는 것이다. 유럽의 경우 철도는 산업혁명을 가속화시켰고 일본에서는 근대화의 견인차 역할을 했다. 우리나라는 1950년대 이후 철도는 산업화를 주도하였고 우리나라의 근대도시형성과 문화의 전파에 큰 역할을 했다. 2004년 고속철도의 개통으로 철도를 통한 사회는 크게 변화하고 있다. 서울~부산 간의 거리가 철도를 통해 약 2분의1로 단축되었고 서울-대전구간의 이른바 통근족이 늘어나고 있는 추세이다. 대형사고·부실시공 줄여나가야
필자는 그간 이러한 세계적인 흐름을 우리나라에 접목시키고자 노력했다. 그러나 이러한 흐름을 가끔은 더디게 하는 현상들이 나타나곤 하였다. 대형사고와 부실시공 등이 바로 그것이다. 최근의 경부고속철도 2단계의 현상도 바로 그러한 부류에 속한다고 하겠다. 값비싼 수업료를 지불한 것이다. 수업료 대가로 우리는 더 훌륭하고 더 효율적인 철도를 건설해야 한다. 철도선진국이 철도개통 후 100년 이상이 지나서야 고속철도를 건설한 것에 비해 우리 철도는 해방 후 약 60년 만에 건설해 세계 5번째의 고속철도 운영국으로 자리 잡은 사실에 만족하지 말고 더 튼튼하고 효율적인 철도건설과 운영에 매진해야 할 때이다. 지금은 철도를 통해 국민에게 더 많은 교통서비스를 제공하고 국가의 녹색성장에도 크게 기여하도록 최선의 노력을 다해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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