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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터리] '일·십·백·천'

우리말에 ‘호미로 막을 일 가래로 막는다’는 속담이 있다. 주로 게으름 때문에 제때에 일을 하지 않거나 해결을 안해 나중에 큰 낭패를 보거나 피해를 입는 경우에 쓰는 표현이다. 게으름과는 무관하지만 필자는 정해진 기본과 원칙을 무시하고 서두르다 고객에게 큰 불편을 주고 회사에 엄청난 손해를 끼친 경험이 있다. 지난 80년대 중반 모 전자회사의 미국 현지 법인 세일즈와 마케팅을 총괄하던 시절이다. 당시 한국 전자제품, 특히 일본에 뒤이어 출시된 VTR가 미국 소비자들의 인기를 끌어 한국에 있는 공장에 선적을 독촉하는 것이 필자의 주 업무가 되다시피 했다. 급기야는 주요한 고객 몇 군데에서 약속한 날짜까지 납품을 안하면 거래를 중단하겠다는 통보를 받고 긴급히 공장에 연락, 모든 책임을 질 테니 약 2주가 걸리는 출하품질검사를 생략하고 선적해달라고 반강제적으로 요구한 것이 화근이 됐다. 선적 몇 개월 후 소비자들에게 팔려나간 VTR가 대량으로 반품이 되기 시작한 것이다. VTR에는 테이프가 다 돌아간 것을 감지하고 되감기를 해주는 릴센서라는 부품이 있는데 이 부품의 20% 정도가 불량이었던 것이다. VTR 시청 중 이 릴센서가 오작동을 일으켜 수시로 되감기를 하자 소비자들의 불만이 반품으로 이어진 것이다. 입소문을 통해 정상품까지 되돌아왔다. 소위 전염성불량에 걸린 것이다. 고객의 피드백으로 문제의 심각성을 판단한 회사는 동종의 릴센서를 사용한 수십만대를 전량 리콜하기로 결정했다. 엄청난 금전적 피해는 말할 것도 없거니와 추락하는 브랜드 이미지는 감내하기 힘들 정도였다. ‘일ㆍ십ㆍ백ㆍ천.’ 이 사건의 값비싼 교훈에서 얻은 고객만족과 품질관리의 단순하고 평범한 진리이다. 정해진 기본과 원칙에 따라 생산출하검사에서 불량이 발견되고 조치가 됐더라면 최소한의 비용으로 해결될 것을 선적, 수입 통관, 고객 인도, 소비자 구입이라는 일련의 행위가 진행된 후에 발견된 불량의 피해는 눈덩이처럼 불어나 열 배, 백 배, 천 배로 커지게 되는 것이다. 릴센서라는 불과 5센트에 불과한 부품의 불량이 기본과 원칙을 따르지 않은 대가로 수천만달러의 금전적 손실은 물론 브랜드 이미지와 고객만족에 치명타를 준 것이다. 덩치가 큰 것이 아니라 빠른 것이 더딘 것을 잡아먹는 시대다. 요즈음 기업들이 다시 속도경영을 강조하고 있다. 이것이 제품 개발이든, 공장 건설기간 단축이든, 관리 프로세스든지 품질과 연계되지 않는 속도경영은 호미로 막을 일을 가래, 아니 심지어는 지게차로 막아야 하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는 것을 명심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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