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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1ㆍ4분기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이 7.8%를 기록하며 7년3개월 만에 최고치를 보였지만 주택시장 및 건설업계가 느끼는 체감경기는 여전히 영하권이다. 올해 초 반짝 상승세를 보였던 서울 아파트 값이 일제히 하락세로 돌아서며 거래가 끊겼고 이의영향으로 신규 분양시장도 얼어붙었다. 미분양 아파트 적체현상도 해소될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대치동 은마, 잠실주공5단지 등 강남권의 주요 재건축 예정 아파트 가격은 올 초 대비 1억원이 넘게 빠지며 서울 아파트 값의 내림세를 이끌고 있다. 또 지방에서나 볼 수 있었던 분양가 할인 아파트가 서울에서 나타나기 시작했다. 박원갑 스피드뱅크 연구소장은 "총부채상환비율(DTI)과 같은 부동산 규제가 시장침체를 이끌었고 그 골이 심화되면서 건설업계 전체가 무기력증을 보이고 있다"고 진단했다. ◇울면서 사업하는 건설사, 경기호전은 '남의 말'=최근 미분양 적체현상이 심화되며 사업성이 양호한 재개발ㆍ재건축 사업을 둘러싼 건설업체의 '제 살 깎기' 경쟁이 격화되고 있다. 예를 들어 서울 강동구 고덕주공6단지 재건축 사업장에서 시공사 선정 입찰에 참여한 D건설사는 최근 이 조합에 173%의 무상 지분율을 제시했다. 사업환경이 비슷한 인근 고덕주공2단지의 시공사가 지난 17일 입찰 제안한 137%와 비교하면 40%포인트 가까이 높은 수치다. 한마디로 공사비를 깎아 조합원의 이익을 늘려주겠다는 얘기다. 건설업계의 한 관계자는 "그나마 사업 안정성이 높은 재개발ㆍ재건축에 '올인'하는 건설업계의 현 주소를 보여주는 사례"라며 "1,600만원선에 불과한 조합원 분양가와 높은 무상 지분율을 감안하면 시공사 몫은 거의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기존 미분양이 해소되지 않은 상황에서 '울며 겨자 먹기'식으로 새 주택사업에 나서는 건설사도 적지 않다. 중견 건설업체 S사의 경우 대구ㆍ부산권에만 5~6곳의 미분양 사업장을 보유하고 있지만 오는 5월 중 부산에서 신규 분양에 나설 예정이다. 이는 땅값에 지급보증을 서주는 조건으로 사업을 수주한 건설업체 입장에서는 사업이 지연되는 만큼 이자비용도 눈덩이처럼 불어나 현금 유동성에 심각한 압박을 주기 때문이다. 미분양이 날 것을 예상하면서도 사업을 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이다. 최근 법정관리를 신청한 남양건설 역시 비교적 관급공사 부문에서는 탄탄한 실적을 쌓고 있었지만 충남권에서 벌인 사업의 이자비용에 발목이 잡혔다. ◇잘 나가는 해외ㆍ관급공사도 '외화내빈' =각 건설사에 황금알을 낳아주던 주택사업이 도리어 위기를 불러오자 각 업체들은 지난해부터 일제히 사업 포트폴리오를 조정하고 나섰다. 주택분야의 비중을 크게 줄이는 대신 해외사업 및 관급공사를 확대하기로 한 것이다. 문제는 정부에서 발주하는 공공공사 물량이 지난해에 비해 크게 줄어들고 있다는 점이다. 대한건설협회가 조달청의 정부발주 공사물량 추이를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지난해 1ㆍ2월 총 2만387건, 8조8,000억원에 달했던 관급공사 건수는 올해 같은 기간 1만2,681건, 4조9,800억원선으로 반토막이 났다. 조준현 대한건설협회 계약실장은 "지난해에는 4대강 등 대형 사업의 발주가 몰렸으나 올해에는 이런 물량이 급감했다"며 "최저가낙찰제 등으로 관급공사의 사업성이 극히 낮은 상황에서 일감마저 줄어 어려움을 호소하는 업체가 크게 늘고 있다"고 지적했다. 해외 수주사업 역시 플랜트 등 일부 분야를 제외하면 높은 리스크에 비해 사업성이 그다지 높지 않다는 게 건설업계의 한결같은 지적이다. 실제로 베트남이나 리비아 등지에서는 한국 건설업체가 시공 중이거나 공사를 따낸 토목ㆍ건축 사업장 4~5곳이 매물로 나와 홍콩 등에서 조성된 펀드에 매수 의향을 타진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한 중견 건설사의 해외영업담당 임원은 "이런 사업장 대부분이 공사비만 간신히 건지는 수준에서 매수인을 찾고 있다"며 "특히 중견업체의 경우 해외사업이 국내시장의 대안이 되기 어려운 게 사실"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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