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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10년 7월 국립극단이 재단법인으로 독립했을 때 연극 시장 침체 가운데 독자 생존에 성공할 수 있을지 우려하는 목소리가 적지 않았다. 하지만 손진책 예술감독은 작품성을 갖춘 레퍼토리를 바탕으로 국립극단의 부활을 선언했고 3년이 지난 현재 국립극단은 주요 작품은 티켓이 없어서 못 팔 정도로 인기를 누리고 있다. 국립극단의 '2011~2013년 관객동향' 보고서에 따르면, 올 봄 시즌 선보인 '칼집 속에 아버지', '안티고네', '푸른 배 이야기' 등 5편의 평균 유료객석점유율이 80.4%로 나타났다. 무료 관객을 포함한 총 객석 점유율에선 모두 100%를 넘었다. "국립극단이 만든 작품이라면 볼 만하다"는 신뢰가 쌓이면서 작품을 꾸준히 찾는 마니아 관객들이 늘어난 것으로 해석된다. '히트 제작소'로 자리를 굳히고 있는 국립극단이 올 가을 시즌 다양한 신작들을 내놓았다.
◇아리스토파네스의 대표 희곡 3편 현대극으로 재탄생=고대 그리스 희극 시인으로 이름을 떨친 아리스토파네스(기원전 445?~385?)의 대표작 '개구리', '구름', '새' 등이 현대적인 감각으로 새롭게 태어나 서계동 국립극단 백성희장민호극장에 오른다. 오는 15일까지 공연하는 '개구리'(각색ㆍ연출 박근형)의 원작은 아테네의 옛 영광을 되찾고자 풍요와 술을 관장하는 디오니소스가 저승에 있는 비극 시인들을 찾으러 가는 여정을 그린다. 연출은 배경을 2013년 대한민국으로 바꾸고 기존 등장 인물을 다양하게 재창조했다.
24일부터 10월 5일까지 무대를 책임질 작품은 남인우 연출의 '구름'이다. 소크라테스의 학교에서 궤변술을 배워온 아이가 빚을 독촉하는 채권자를 궤변으로 쫓아버리지만 이후 자신이 저지른 패륜마저도 궤변술로 정당화한다는 얘기를 그린다. 남 연출가와 김민승 작가의 공동 각색으로 억지와 말솜씨가 진실을 가리는 현실을 날카롭게 풍자한다.
윤조병ㆍ시중 부자(父子)가 선보이는 '새'는 10월 22일부터 11월 3일까지 선보인다. 아버지인 윤조병 작가가 각색한 희곡을 아들인 윤시중 연출가가 무대에 올린 것. 원작에 새로운 해석을 입혀 이상적인 나라를 찾는 두 노인이 새의 왕에게 건국을 제안한다는 이야기를 담아낸다.
◇젊은 연출가의 신선한 감각을 만나다=젊은 연출가의 신선한 시각이 돋보이는 작품 2편이 잇따라 무대에 오른다. 차세대 연출가로 주목 받고 있는 김재엽이 손댄 '알리바이 연대기'가 15일까지 소극장 판에 오른다. 김 연출은 1930년에서부터 현재에 이르는 83년의 현대사 속에서 어떤 '알리바이'들이 만들어지고 현실 논리에 의해 왜곡됐는지 보여준다. 개인의 삶에 개입한 국가의 공권력과 제도가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치는지 성찰한다. 진지한 주제 의식과 따뜻한 감성적 연출로 호평 받은 극작가 겸 연출가 김낙형의 신작 '밤의 연극'은 21일부터 10월 3일까지 선보인다. 세상의 축소판인 지하철에서 4명의 남녀가 불안정하게 내뱉는 독백을 통해 서로에게 다가가는 여정을 다룬다. 정신적 공허함에 시달리는 현대인의 고뇌를 날카롭게 보여준다는 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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