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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21C 한국의 산업모델

위정현 중앙대 교수·콘텐츠경영연구 소장

일본인들은 지난 90년대를 ‘잃어버린 10년’이라 부른다. 미국이나 한국이 정보기술(IT)혁명을 기반으로 제조업의 경쟁력을 회복하고 새로운 산업을 육성시키고 있었던 데 반해 일본경제는 목표를 상실한 채 표류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일본경제는 왜 10년을 잃어버렸을까. 70년대 세계를 강타했던 오일쇼크 속에서도 불사조처럼 살아났던 일본경제, 80년대에는 ‘팍스 아메리카나’를 자랑하던 미국조차 위협하는 막강한 경쟁력을 가졌던 일본경제가 왜 90년대를 ‘헤이세이 불황’(현 천황의 연호를 딴 불황) 속에서 낭비했을까. '日 잃어버린 10년' 교훈으로 그 답은 바로 새로운 산업형성의 실패, 즉 이노베이션(혁신)의 실패에 있다. 90년대 초반까지 미국 제조업은 절망적일 정도로 일본에 역전당해 있었다. 자동차ㆍ전자를 비롯해 조선ㆍ기계 등 제조업의 많은 부분이 일본기업에 의해 시장에서 밀려나고 있었다. 이런 제조업의 절망 속에서 미국 내에 태동하고 있던 새로운 산업이 IT였다. 미국은 IT산업을 지렛대로 컴퓨터와 정보ㆍ통신산업을 새로운 21세기 산업으로 등장시켰다. 인터넷을 기반으로 한 아마존이나 야후와 같은 비즈니스는 미국이 다시 일본의 추격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었던 원동력이었다. 그러나 제조업에서 미국산업을 능가했던 일본은 90년대에 IT혁명을 받아들여 새로운 산업을 창출하는 데 실패했다. 즉 2차 대전 후 미국의 제조업과 기업을 경쟁상대로 삼고 달려온 일본이 정작 90년대 들어 그 목표가 달성된 뒤 주저앉은 것이다. 설정된 목표가 성취된 다음에 해야 할 일은 새로운 목표(산업)설정이지만 일본은 버블에 취해 이런 목표설정을 하지 못했다. 최근 한국경제는 일본형 장기불황에 빠져드는 것 아닌가 하는 불안감에 휩싸여 있다. 정부는 ‘국민소득 2만달러 시대’를 외치지만 구체적인 플랜이 부재한 상태에서는 공허할 뿐이다. 앞으로 한국은 어떤 산업육성 모델을 가져야 하는가. 지금 한국에서 요구되는 산업은 개발도상국은 물론 선진국과 비교해도 경쟁우위를 가질 수 있는 산업이다. 가격경쟁력을 기반으로 한 산업은 이미 중국의 ‘인해전술’로 인해 급속하게 침식당하고 있다. 그렇다고 미국이나 일본이 압도적인 우위를 점하고 있는 우주항공이나 로봇ㆍ바이오산업을 단기간에 육성하는 것도 쉽지 않다. 여기서 온라인 게임은 바로 이런 21세기 한국에 요구되는 산업에 가장 근접해 있다. 온라인 게임은 한국이 세계 최고의 경쟁력을 보유하고 있는 산업이다. 이미 정부가 제시한 차세대 성장동력 중 하나이기도 한 온라인 게임은 중국과 같은 개발도상국은 물론 미국이나 일본의 게임사와도 무려 3년 이상의 기술격차를 유지하고 있다. 또 중국시장의 60% 이상을 석권하고 있으며 일본과 동남아시장을 장악하고 있다. 세계 콘솔 게임기 시장의 양대 산맥인 일본의 소니와 미국의 마이크로소프트사가 자사의 게임기에 게임을 싣기 위해 앞 다퉈 한국을 방문하는 산업이 온라인 게임이기도 하다. 지금까지 존재한 한국의 산업 중 이런 압도적인 경쟁력을 보유한 산업이 있었던가. 온라인 게임은 새로운 산업육성의 모델 역시 제시하고 있다. 온라인게임 산업 경쟁력 커 경공업에서 중화학공업ㆍ전자산업에 이르기까지 한국의 산업은 정부가 주도하고 민간이 참여하는 형태였다. 즉 정부가 판을 짜놓고 여러 유인책으로 기업을 끌어들이면 기업이 들어가 플레이하는 형태였다. 그러나 온라인 게임은 다르다. 온라인 게임은 정부가 일절 개입하지 않은 상태에서, 아니 무관심한 상태에서 산업의 주체가 형성됐고 이들의 피나는 노력에 의해 개화됐다. 정부가 관심을 가지고 산업육성책을 마련한 것은 이미 온라인 게임산업이 성장궤도에 올라선 후였다. 온라인 게임은 민간 주도의 산업 모델이 무엇인가를 잘 보여주고 있다. 이미테이션(모방)에서 이노베이션(혁신)으로의 질적 전환은 현재 한국경제가 직면한 최대의 과제이다. 단지 선진국의 제품을 모방해 가격경쟁력으로 승부하는 모델이 아닌 아이디어와 비즈니스 모델로 승부하는 산업이 생성될 때 한국은 앞으로의 10년을 잃어버리지 않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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