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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상인 기자의 술술-미술] 미술계 '큰 손'으로 떠오른 카타르 왕가

"세계문화예술 중심지 되겠다" 야심

고갱 '언제 결혼하니?' 3억弗에 구매

미술품 거래사상 최고가 기록 경신

카타르 도하의 ''이슬람미술관'' 전경. 세계 문화예술 중심지를 목표로 2008년 오픈했다. /최수문기자

폴 고갱 ''언제 결혼하니?'' /사진제공=아트넷

'언제 결혼하니?'

설 연휴를 보낸 노총각·노처녀들은 몸서리칠 이 말이 미술계에서는 '세계에서 가장 비싼 작품'의 동의어가 됐다. 후기 인상파 화가 폴 고갱(1848~1903)의 1892년작 '언제 결혼하니?'는 최근 스위스 바젤에서 열린 비공개 경매에서 3억달러(약 3,300억원) 이상이라는 사상 최고가를 기록하며 중동의 카타르 왕가에 팔렸다.

미술계에서 카타르 왕족의 영향력이 급격하게 커지고 있다. 이번 세계 최고가 미술품 기록을 경신한 고갱의 '언제 결혼하니?' 이전에 1위를 차지하고 있던 폴 세잔(1839~1906)의 '카드놀이 하는 사람들'도 카타르 왕가가 구매자였다. 직접 작품을 고른 이는 셰이크 알 마야사 카타르 공주. 그녀는 2011년 뉴욕 메트로폴리탄미술관의 근대미술 기획전에서 크게 주목 받은 '카드놀이…'을 1억5,800만파운드(약 2,800억원)에 사들였다.

알 마야사 공주는 2011년 미술의 '아트+옥션'지가 선정한 '미술계 파워 100인' 중 1위에 올랐고 '아트뉴스'가 선정하는 '세계 파워컬렉터 10인' 등에 꾸준히 이름을 올리며 미술계의 큰손임을 과시하고 있다.

미술은 문화적 산물이지만 그 무게중심은 부(富)의 이동을 따라 옮겨 다닌다. 한때는 유럽미술에 대한 콤플렉스에 시달리던 미국이 중심이었고, 최근에는 경제성장을 등에 업은 중국의 영향력이 커졌었다.

카타르가 미술계의 '큰손'으로 부상한 것도 '돈의 힘'과 무관하지는 않다. 그러나 카타르 정부는 좀 더 적극적으로 2008년 '카타르 국가비전'을 발표하면서 세계 문화예술의 중심지가 되겠다는 야심을 천명했다. 카타르국립박물관·이슬람미술관·아랍현대미술관 등 알 마야사 공주가 이끄는 미술관들만 보더라도 그 같은 의지를 반영하고 있다.



주목할 점은 이번에 3억달러 기록을 세운 고갱이 '원시주의(primitivism)'를 전파한 최초의 화가로 꼽힌다는 것. 원시주의란 인위적인 문명의 산물보다 자연적인 것에 더 가치를 두는 경향을 말하는데, 19세기 말 유럽 제국주의가 확산되면서 식민지에서 가져온 수집품들이 진귀하게 여겨지던 시기였던지라 문명에 환멸을 느끼며 민속미술에 관심을 가진 고갱의 태도는 문화적으로 큰 영향을 끼쳤다.

예쁘지도 않은 타히티의 여인들을 촌스러운 색감으로 강렬하게 표현한 '언제 결혼하니?'도 그런 맥락에서 중요하게 평가된다.

백인의 눈으로 까맣게 그을린 타히티의 처녀들을 그린 이 그림은 문명이 닿지 않은 비서구의 문물을 수집의 대상으로 보던 유럽인에게는 문화재 격인 작품이다.

이런 명화들이 구릿빛 피부의 중동 부호들이 사들이는 새로운 수집품이 되었다는 사실이 아이러니다. 그것이 벼락부자의 문화적 반란이든 조명받지 못한 문화에 대한 자신감이든 간에 카타르 왕가의 미술계 영향력은 한동안 지속될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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