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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흥국 위기의 뇌관 터키를 가다] 정치혼란에 금융불안 겹쳐… "제2 뱅크런 오나" 긴장감 감돌아

반정부 시위 잇따르고 지방선거 변수 뒤섞여 이스탄불 등 폭풍전야

실업률 10% 육박하고 경상수지 적자지속 등 경제 부문도 위태위태


"이러다 뭔가 큰 게 한번 터지지 않을까 모르겠습니다. 뱅크런(은행 예금 인출 사태) 같은 위기가 실제 현실화할 수 있어요."

지난 20일 세계적 관광지이자 터키 경제수도 이스탄불의 중심가 케스킨카렘거리. 그곳에서 만난 한 외국계 대기업 임원은 터키를 어디로 튈지 모르는 럭비공에 비유했다. 서울경제신문이 터키를 찾은 것은 지난 18~20일. 행정수도 앙카라와 경제수도 이스탄불은 겉으로는 여느 평온한 일상의 모습과 다를 바 없었다. 그러나 현지 시민들의 속내는 달랐다. 그는 "오는 27~28일께 현 여당 지도부를 겨냥한 대형 스캔들 의혹이 터질 것이란 소문이 파다해 지방선거를 앞두고 정국이 또다시 요동칠 것"이라며 "30일 지방선거 결과에 따라 터키 경제정책이 달라질 수 있어 사업 추진전략을 어떻게 짜야 할지 오르겠다"고 불안감을 전했다.

신흥국 대표주자인 터키가 경제위기와 정치 격변의 풍랑에 휩쓸리고 있다. 나라 밖으로는 미국의 양적완화 축소, 안으로는 지방선거라는 초대형 변수들이 뒤섞여 터키 경제에 몰아치고 있다. 이러다가는 터키가 최근 불거진 신흥국 위기를 재점화할 방아쇠가 될 수 있다는 우려가 높아지고 있다.

경제발전 업적에 힘입어 한때 70%대에 달하던 터키 집권여당 정의개발당(AKP)의 지지율은 현재 40%대 후반까지 추락한 상황이다. 여권·정부의 부정부패가 끊이지 않는데다 경제성장도 주춤한 데 따른 결과다. 터키의 경제성장률은 2011년 8.5%였던 것이 이듬해 2.6%대로 급락했다. 올해도 3.5%에 그칠 것으로 전망된다.

그나마 야권 중 여당을 대체할 만한 지도력, 지지율을 가진 정당이 없어 지방선거에서 여당의 승리가 점쳐진다는 게 현지 정치권의 분석이다. 하지만 득표율이 과반에 못 미칠 가능성이 높아 야권과의 연정이 불가피한 반쪽짜리 승리에 불과하리라고 외신들은 내다보고 있다.

위기감을 토로하기는 현지 시민들도 마찬가지. 19일 앙카라의 '명동'이라 할 수 있는 육셀카데시거리는 목전의 지방선거에 출마하는 후보자들의 홍보경쟁으로 뒤숭숭했다. 32년째 노점상으로 일해온 모하렘 일드름(64)씨는 자국의 현재 모습을 민주주의를 억압당한 시리아에 비유하며 "시위와 경찰 진압으로 장사를 일주일 동안 못할 정도"라고 한숨을 쉬었다.



경제 부문의 불안감 역시 정치 부문 못지않다. 이스탄불에서 관광업에 종사하는 한 한국인 교포는 "실업률이 10%에 육박하는데 특히 청년실업률은 더 높아 심각한 수준"이라며 "그러다 보니 이곳 청년들 사이에서도 직업 안정성이 상대적으로 높은 공무원 지원 열풍이 불고 있다"고 전했다. 빚이 많은 터키에 대해 외채상환 압력이 거세지면 외환·금융위기가 현실화하고 이것이 인도네시아 등 또 다른 신흥국으로 전염될 수 있다는 분석도 금융권에서 심심찮게 제기되고 있다.

물론 현지 당국자들의 입장은 다르다. 터키 중소기업청(KOSGEB)의 사이스 투나 사힌 부청장은 "2009년 금융위기로부터 대부분의 나라들은 회복하지 못했지만 터키는 아직 성장 중"이라며 "터키는 (외국인투자가들이) 안전하게 투자하고 회수할 수 있는 국가"라고 단언했다. 이어 "걸프만 일대의 오일머니도 유입되고 있다"며 미국이 양적완화 축소로 자본을 완화해도 터키에 투자할 대체자본이 다양함을 강조했다.

이 같은 당국의 자신감에도 불구하고 현지에 진출한 외국계 기업인들은 걱정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이스탄불에서 만난 한 외국 대기업 관계자는 "터키는 정부의 외환보유액이 1,000억달러대에 불과한데 그나마 그중 70%가량은 대외지급보증 등으로 묶여 실제 가용액은 30%가량밖에 안 된다"며 "반면 정부 보유액보다 많은 외환이 민간 은행에 예치돼 있어 경제위기가 가시화하면 민간 외환이 대거 인출되는 뱅크런으로 이어지는 금융불안을 촉발할 수 있다"고 내다봤다. 고질적인 경상수지적자도 터키 경제를 위기로 몰아가는 도화선이다.

터키 당국도 내심 이 같은 문제점을 고심하는 표정이다. 중소·벤처기업들의 원천기술 확보에 대대적인 재정지원을 해 수출경쟁력을 높이고 소비세와 금리 인상과 같은 극약처방을 통해 과도한 내수를 억제하는 등 경상수지 개선에 총력을 기울이는 중이다.

따라서 우리 정부가 유럽과 중동을 잇는 요충지인 터키와의 경제관계를 다지려면 양국 간 보완적 업종을 중심으로 기술·자본제휴를 확대하고 양국 간 통화 스와프 체결로 현지 외환정책에서의 공조를 다지는 정책도 고려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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