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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경제소사/2월12일] 금본위제도 채택


광무(光武) 5년(1901년) 2월12일, 대한제국이 화폐조례를 공포한다. 골자는 금본위제도 도입. 이준 열사의 사위인 유자후가 발간한 ‘조선화폐고’(1930)에서 화폐전문가로 묘사될 정도로 고종은 화폐개혁에 강한 집념을 보였다. 수차례 화폐개혁안을 내놓고 은본위제도를 미리 시행했던 것도 이런 맥락에서다. 결과는 어떻게 됐을까. 실패다. 내부 역량 부족과 일본의 끈질긴 방해 탓이다. 무엇보다 재정이 빈약했다. 살림은 가난한데 돈 쓸 곳을 많았던 대한제국의 선택은 악화(惡貨) 남발. 액면가는 2전5푼이지만 제조원가는 5푼에 불과해 막대한 화폐주조차익을 남길 수 있는 백동화(白銅貨)를 마구 찍어댔다. 일본인들도 니켈과 간단한 압연기만 있으면 제조 가능한 백동화를 대량 위조해 물가 앙등을 거들었다. 금화를 발행할 재원인 지금(支金)도 부족했다. 운산광산 등에서 쏟아지는 금도 대부분 미국과 일본으로 흘러갔다. 대한제국은 차선책으로 프랑스ㆍ미국 등과 차관도입을 교섭했지만 일본은 화폐개혁용 차관을 갖은 방법으로 막았다. 자국 통화체제로의 편입을 방해한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대신 식민지용 불태환지폐인 제일은행권 통용을 강요했다. 대한제국이 제일은행권을 거부하자 군함을 동원한 적도 있다. 결국 대한제국의 화폐개혁은 실패로 끝나고 일본인 고문이 재정권을 장악한 이후 근대적 조폐창인 전환국(典圜局)마저 문을 닫았다. 화폐주권 상실은 경제종속을 가속시키고 끝내 한일병탄으로 이어졌다. 제국주의와 금본위제도는 이젠 역사의 뒷편으로 사라졌지만 일본의 경제 패권은 여전하다. 엔화를 국제통화로 삼으려는 일본의 노력은 예나 지금이나 똑같다. 땀 흘려 벌어들인 달러를 고스란히 일본에 넘겨주는 구조도 좀처럼 변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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