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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경부가 2020년까지 자동차에서 나오는 온실가스를 1㎞당 97g(연비 기준 리터당 24.3㎞)으로 낮추도록 하면서 자동차 업체들이 비상이다. 140g인 현재 기준 대비 연평균 4.5%씩 줄여야 한다. 유럽(2020년 93g)과 함께 세계 최고 수준이다. 현대·기아차 뿐만 아니라 수입차 업체도 큰 부담을 갖고 있다.
특히 대형차를 파는 수입차는 타격이 크다. 당장 내년부터 단계적으로 적용되는 탓에 일부 수입차 업체는 자유무역협정(FTA) 이행을 들먹이며 직간접적으로 불만을 드러내고 있다.
우리나라에서 팔리는 수입차의 이산화탄소 배출량은 얼마나 될까. 서울경제신문이 에너지관리공단과 한국수입자동차협회의 자료를 바탕으로 주요 브랜드의 지난해 국내 판매 1~5위차를 따져보니 랜드로버와 캐딜락 등이 온실가스를 많이 내뿜었다.
'강남 싼타페'라는 얘기를 듣고 있는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 랜드로버는 1㎞당 평균 211g으로 조사 대상 17개 가운데 1위를 차지했다. 랜드로버에서 지난해 판매 1위였던 '디스커버리4 3.0 TDV6'는 208g의 이산화탄소가 나왔다. 지금은 국내 판매량이 적어 다소 완화된 기준을 적용받고 있지만 앞으로 기준이 강화되면 획기적으로 배출량을 줄여야 하는 처지다.
2위는 대형·고성능차의 명가 캐딜락이었다. 평균 191.6g이나 됐다. 특히 'SRX 3.0'의 배출량은 무려 235g으로 캐딜락 뿐만 아니라 조사 대상 중 가장 많았다. 포드(182.8g)와 크라이슬러(173.6g)가 그 다음이었다. 포드의 작년 국내 판매 1위였던 '익스플로러'의 배출량은 200g에 달했다. 두 회사는 전반적으로 배출량이 높은 편이다.
닛산의 고급브랜드 인피니티는 평균 169.4g이었다. 재규어는 168.6g으로 두 회사가 엇비슷했다. 혼다(159.4g)와 닛산(149.4g), 메르세데스 벤츠(147.6g), 볼보(141g) 등이 뒤를 이었다.
아우디(136.5g)와 도요타(136g), 렉서스(135.4g), 폭스바겐(129.2g), 미니(125.4g), 푸조(110g) 등은 상대적으로 배출량이 적었다. 특히 도요타의 '프리우스'는 1㎞당 77g의 이산화탄소를 배출해 전체 차종 가운데 가장 낮았다. 연비도 리터당 21㎞나 된다. BMW는 평균 118.4g으로 이산화탄소를 가장 적게 내보내는 브랜드였다. 큰 틀에서 보면 '미국차>일본차>독일차' 순이다.
수입차 업계는 겉으로는 "정부 규제를 존중하며 이를 따르겠다"는 입장이지만 속내는 복잡하다. 국내 기준이 세계에서도 가장 높은데 그만한 수요는 안 되는 지역인 탓이다. 환경부의 규제는 현대·기아차도 벅차지만 국내 판매 규모를 감안하면 수입차에 비해 월등히 유리하다는 얘기다. 현대차의 베스트셀링 모델인 '아반떼'는 1㎞당 122~124g 정도의 이산화탄소가 나오고 기아차의 '모닝'은 104~122g 수준이다.
수입차 업계의 고위관계자는 "차 판매 가격을 결정하는 요소는 환율과 옵션, 해당 국가의 규제"라며 "한국은 판매 규모가 상대적으로 적어 과도한 환경과 안전규제를 따르기 위해서는 차량 가격이 인상될 가능성이 높다"고 설명했다.
환경규제로 국민들은 공기가 맑아져 이익을 얻겠지만 수입차 소비자는 비용부담이 늘어날 수 있다는 뜻이다. 지난해 수입자동차 판매량은 총 19만6,359대다. 반면 현대차는 상용차를 포함해 68만3,532대, 기아차는 46만4,563대를 팔았다. 규모의 경제에서 차이가 날 수밖에 없는 셈이다.
자동차 업계의 한 관계자는 "친환경차 기술 개발을 촉진하고 대기의 질을 개선한다는 정부의 의도는 좋지만 지나치게 속도가 빠르다는 느낌"이라며 "결국은 소비자 부담으로 이어질 것"이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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