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성(性) 정체성은 타고 나는 것일까, 성장과정에서 후천적으로 결정되는 것일까. 어느 것이 답이라고 결론 짓긴 어렵지만, 생각의 극단은 분명 비극을 불러온다.
'성은 교육과 호르몬 요법으로 바꿀 수 있다'는 양육론의 철저한 실험 도구로 14년간 성(性)을 도둑 맞아야 했던 인간. 브루스, 브렌다, 데이비드… 평생 3개의 이름으로 혼란스러운 인생을 살아야 했던 사람. 책은 한 인간의 파란만장한 '성 정체성 찾기' 여정을 통해 한 인간의 존엄을 무시하고 파괴한 과학계의 위선과 교만을 고발한다.
1965년 8월 캐나다 위니펙에서 일란성 쌍둥이 남자 형제가 태어난다. 기쁨의 순간도 잠시, 쌍둥이 중 형인 브루스는 생후 8개월째던 어느 날, 포경수술 의료 사고로 남근을 잃는다. 아이의 큰 결함 탓에 상심에 빠져있던 브루스의 부모가 만난 사람은 성 심리학자 존 머니 박사. 그는 '적절한 생식기 수술과 교육으로 후천적 성을 결정할 수 있다'며 브루스의 성전환수술을 권유한다. 그렇게 브루스는 태어난지 8개월 만에, 신체의 결함을 가리기 위해 성전환수술을 받고 '브렌다'라는 여자로 다시 태어난다. 그녀는 성장할수록 성적 정체성에 혼란을 겪지만 머니 박사는 브렌다를 성전환의 대표 성공 사례로 활용한다. 데이터를 자신의 욕망에 맞게 끼워 맞추는 것은 기본, 성 정체성을 심어준다며 브렌다와 그의 일란성 쌍둥이 동생 브라이언을 상대로 '성관계 연습 놀이'를 시키는 등 가학적인 실험을 진행한다. 뒤늦게 자신의 성전환 수술 사실을 알게 된 브렌다는 15살이 되던 해, '남자로의 복귀'를 선언하고 잃어버린 성을 되찾는다. 그리고 '데이비드(골리앗에 맞서 싸워 이긴 다윗을 의미)'로 새 인생을 시작한다. 결혼도 하고 세 아이(아내가 이전 남편들에게서 낳은)의 아빠도 된 데이비드. 그는 사회의 무거운 억압을 헤치고 자신을 찾은 용감한 인간이다. 그러나 세상이, 과학이, 의학이 그에게 준 상처는 너무도 컸다. 어린 시절부터 자행된 비인간적인 실험, 성 정체성의 혼란 등 불행했던 아동·청소년기의 영향이었을까. 데이비드는 40세이던 2004년 자살을 선택하며 고단했던 생을 마감한다.
책은 저자가 1998년 '롤링스톤'에 데이비드를 둘러싼 사건과 의학계에서 벌어진 추문을 폭로하기 까지 수집한 녹취원고와 상담 기록 등을 바탕으로 작성한 '논픽션'이다. 이 엄청나게 무서운 이야기가 소설이 아니라는 점이 더 공포스럽다. 신체의 장애를 덮기 위해 성별을 바꾸는 '이상한 나라'에서 원래 '본인의 것'을 찾고자 애썼던 데이비드. 그대여, 이상한 건 당신이 아닌 세상이었습니다. 1만5,8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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