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에서는 없애는 금융회사의 업권별 칸막이를 우리만 쌓고 있습니다. 앞으로 프로리그(금융회사 간 경쟁)는 규제를 대폭 풀되 프로와 아마추어(개인)의 경기에 대한 보호장치만 만들면 됩니다. 금융산업의 발전을 막는 덧칠 규제, 얽힌 규제도 풀어야 합니다."
사석에서 만난 신제윤 금융위원장이 밝힌 규제완화의 큰 골격이다. 금융회사의 경쟁력을 키우기 위해 해외진출의 족쇄를 없애고 프로들끼리는 마음껏 경쟁할 수 있도록 규제를 최소화하겠다는 것이다. 대신 금융회사와 고객은 프로와 아마추어로 비교될 수 있는 만큼 고객 등에 대한 보호장치인 '착한 규제'는 유지하겠다는 얘기다. 해외진출 금융회사가 은행과 증권 업무를 동시에 할 수 있도록 완화를 하는 것이나 은행 점포에 대한 50%규제(은행 업무 50% 이상 활용)를 푼 것도 이런 취지에서다. 장기적으로는 은행원이 증권 업무도 할 수 있도록 '벽'을 허물 계획도 갖고 있다. 금융위의 한 관계자는 "해외 금융회사는 '뱅크(bank)'라는 이름 속에 은행·증권·보험이 섞여서 운영된다"면서 "업권별로 할 수 있는 업무가 제한된 국내 금융회사는 해외경쟁에서 불리하다"고 설명했다. 이와 함께 과거 규제에 다른 규제가 덧붙여져 복잡하게 덧칠돼 있는 규제나 여러 기관에 중복돼 있는 규제들도 이번에 모두 찾아내 없앨 계획이다.
◇현재까지 확정된 규제완화 어떤 게 있나=금융산업의 발전을 막는 규제는 푼다. 그동안 해외에 진출하는 금융회사에 막혀 있는 은행-증권업 겸업을 허용한다. 금융회사의 부실이 다른 회사로 전이되는 것을 막기 위해 만들었던 칸막이 규제를 풀겠다는 것이다. 물론 해외진출 금융회사로 국한한다. 금융당국은 업권별 칸막이가 없는 말레이시아와 인도네시아, 홍콩 및 유럽과 미국 등지에 진출 길이 넓어질 것으로 보고 있다. 금융위 관계자는 "해외는 건전성에 대한 검증만 통과하면 업권별 칸막이가 없다"면서 "국내법 때문에 해외에 진출하지 못한다는 소리는 나오지 못하게 할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금융규제가 강하고 국내 금융회사가 앞다퉈 진출하려는 미얀마·베트남 등에는 해당하지 않는다.
은행 점포에서 은행 관련 업무를 50% 이상으로 묶고 있는 규제도 푼다. 공간 규제를 풀어 겸업을 활성화하겠다는 취지에서다. 금융당국은 자동화기기나 인터넷뱅킹으로 일반 은행업무 고객이 줄어든 은행 점포는 앞으로 펀드나 보험판매 창구 및 투자상담 창구로 활용하게 할 방침이다.
중소·벤처기업의 금융지원에 대한 숨은 규제도 풀린다. 먼저 정부나 공공기관이 시중은행을 통해 빌려주는 정책자금 가운데 금리가 낮은 시설자금 기준을 넓힌다. 기업에 대한 정책자금은 크게 공장 등 설비투자에 활용하는 시설자금과 인건비나 기술개발 등에 활용하는 운영자금이 있다. 시설자금은 시설을 담보로 세울 수 있어 최저 1%까지 금리가 낮다. 문제는 설비가 완공된 후 반드시 거쳐야 하는 시험가동에 들어가는 비용의 경우 시설자금이 아닌 운영자금으로 분류돼 금리가 높아진다는 점이다. 추가 대출을 받기도 쉽지 않다. 중소기업 등의 업계가 시설자금 범위 확대를 요구한 것도 이런 까닭이다.
신용보증기금이나 기술보증기금 등 보증기관의 규제도 풀린다. 1년에 한 번 보증한도를 정하는 한도거래 보증의 경우 그동안 매출 없이 기술만 개발한 기업은 한도를 높이기 어려웠다. 앞으로는 특허권이나 실용신안권 등 기술을 개발한 기업이 발명진흥회 등 전문기관의 평가를 통과하면 매출이 늘어나기 전이어도 보증한도가 높아진다. 거래처가 늘거나 시설을 확충했을 때도 마찬가지다.
이와 함께 과거에 보증사고를 낸 기업은 신규 보증심사 대상에서 제한됐지만 심사에 외부 인사를 참여시켜 기회를 넓히고 보증목표도 제시하기로 했다. 다만 보증사고를 막기 위해 보완책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6월까지 나쁜 규제 모두 털어낼 예정=금융위는 6월까지 개선 대상으로 꼽힌 규제를 모두 털어낼 방침이다. 금융위는 그간 △규제심의 태스크포스(TF) 운영 △규제목록 작성 △민원분석 △개선방안 마련 등의 절차를 거쳐 목록을 만들었다. 일부 민감한 사안은 조율작업을 벌이고 있지만 대부분은 끝났다. 청산대상이 될 규제는 청와대 보고와 규제개혁장관회의 등을 거쳐 최종 폐기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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