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마트 산업에서는 대기업·中企 협력… 애플이 아닌 실리콘밸리와 경쟁 필요
연기금 주주권 행사도 정체된 기업 자극…과점화된 산업 생태계 바꿀 촉매될것
MB정부, 원전·유전·시스템 반도체 등 향후 30년간 먹을거리 만들어 놓을 것 곽승준(사진) 미래기획위원장과의 대화는 언제나 통쾌하다. 여러 정책 논쟁의 한가운데 있다 보면 이리저리 민감한 이슈를 피해갈 법도 하지만 곽 위원장은 자신의 의견을 명쾌하게 밝히는 데 망설임이 없다. 지난 4일 서울 광화문에 위치한 그의 집무실에서 진행된 '서경이 만난 사람' 인터뷰에서도 곽 위원장의 발언은 거침이 없었으며 논리적인 정연함도 여전했다. 요즘 곽 위원장은 산업 생태계에 푹 빠져 있다. 대기업에 쓴소리만 내놓는 단계를 넘어 이제는 대안을 내놓겠다는 것이다. 동반성장도 산업 생태계 조성과 함께 이뤄질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는 산업 생태계를 호수와 비교했다. "어떤 호수는 뱀만 살고 다른 호수는 뱀도, 미꾸라지도, 물고기 등도 산다면 호수 생태계는 당연히 후자가 더 좋을 것"이라며 "산업도 마찬가지다. 스마트 산업에서는 대기업 혼자보다는 중소기업과 군단을 형성해 다른 생태계와 경쟁해야 한다"고 말했다. 최근 곽 위원장이 이슈화시킨 연기금 주주권 행사, 시스템반도체 육성 등도 별개의 아이템처럼 보이지만 산업 생태계 조성을 위한 전 단계이다. 곽 위원장은 "이제는 실리콘밸리와 대한민국 생태계가 경쟁하는 시대이지 개별 기업끼리 경쟁하는 시대가 아니다. 애플과 삼성전자가 스마트폰을 두고 주도권 다툼을 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앱 개발, 콘텐츠, 오퍼레이팅 시스템 등 산업 생태계간의 경쟁"이라고 설명했다. 오는 10월 시스템반도체 육성계획을 발표하기로 한 것도 곽 위원장은 산업 생태계 경쟁에 적응하기 위한 것이라고 했다. 그는 "산업 생태계의 경쟁은 스마트 산업에서 가장 활발할 것이고 스마트 시대에 우리가 뒤떨어지는 부문은 정부가 지원을 해야 한다"며 "메모리반도체는 1등을 하고 있고 콘텐츠는 한류 등 계속 만들어지는 반면 시스템 반도체는 침체된 만큼 정부가 강력한 지원책을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시스템반도체 육성은 말로만 하는 이공대 살리기의 실체적인 정책도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곽 위원장은 "30년 전 만들어놓은 제조업으로 지금껏 먹고 살았다면 현 정부는 우리가 앞으로 30년 동안 먹을거리를 만드는 업적을 남길 것"이라며 "원전ㆍ유전ㆍ시스템반도체 등이 대표적인 먹을거리가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곽 위원장은 과점화된 우리 경제를 산업 생태계로 바꿀 촉매로 연기금 주주권 행사를 꼽았다. 55조원을 국내 주식에 투자해 139개 기업에서 5% 이상의 지분을 보유하고 있는 국민연금의 적극적인 주주권 행사가 정체된 기업에 자극을 줄 것이라는 말이다. 곽 위원장의 적극적인 이슈 파이팅과 더불어 최근 국민연금의 주주권 행사 실행이 구체화하고 있다. 그는 "주주권 행사 전문위원회가 순수 민간인을 대상으로 올 12월에 구성될 것"이라며 "민간위원으로는 기업가치를 올릴 수 있는 전문가, 예를 들어 안철수ㆍ김택진 같은 분이면 좋지 않겠냐"고 말했다. 국민연금 주주권 행사가 신(新)관치로 변질되지 않겠냐는 지적에 곽 위원장은 손사래를 쳤다. 그는 "기업가치 극대화가 목적이고 기업가치를 높일 경우 창업주는 물론 고갈 위험이 있는 국민연금에도 도움이 된다"며 "사외이사 1명 파견하고 지분 6~7%로 무슨 관치냐"고 되물었다. 그는 이어 "국민연금이 5년 이상 장기투자를 하면 기업에도 안정적인 파트너가 생긴다"며 "경영권이 투명해지고 참견하는 시어머니가 생긴다는 막연한 불안감일 뿐"이라고 말했다. 연금의 주주권 행사 방식은 포커스 리스트를 작성해 제안서를 보낸 후 직접 이사회에 참여해 혁신이 필요하다는 판단이 서면 사외이사 등을 파견하게 되는 것이 요체다. 그렇다면 삼성전자 등 국내 대표 기업에 당장 내년 3월 국민연금 주주권 행사가 진행될까. 곽 위원장은 "삼성 등도 포커스 리스트에 오르면 들어갈 수 도 있다"며 "중요한 것은 기업가치 제고와 국민연금의 수익, 창업자 장기 비전이 동일한 연장선에 있다"고 말했다. 연금 주주권 행사를 앞으로 어떻게 진행할 것인지에 대해 곽 위원장은 "이미 국민연금이 몇 년 전부터 준비했지만 벽에 부딪혀 돌파하지 못한 것을 미래기획위원회가 공감대 형성을 위해 화두를 던진 것"이라며 "구체적인 방안은 국민연금이 다 준비하고 있다"고 전했다. 또 다른 이슈인 국민주로 화제를 옮겼다. 홍준표 한나라당 대표가 제시한 공공기관 및 공적자금 투입은행의 '국민주 매각'에 대해 곽 위원장은 "안 된다고만 하지 말고 되는 쪽으로 논쟁을 해보자"고 몇 번이고 강조했다. 곽 위원장은 공공기관 민영화의 최초 설계자로 불가분의 접점을 가지고 있다. 그는 이명박 정부 초기 국정기획수석을 지내며 인수위부터 공공기관 민영화 계획을 만들고 구체화시켰다. 현 정부의 '공공기관 선진화'의 틀이 그의 머릿속에서 나왔다. 곽 위원장은 "지지부진한 공기업 민영화에 대해 홍준표 한나라당 대표가 국민주 방식을 내놓으며 논쟁을 붙인 것은 분명 진일보된 것"이라며 "여러 가지 부작용이 있지만 논의를 하고 융합시켜 적절한 방안을 찾으면 된다"고 말했다. 당장 국민주 매각 대상으로 거론된 인천국제공항에 대해 그는 오해하는 부분이 있다고 지적했다. "활주로나 시설을 매각하는 것이 아니고 운영권을 매각하는 것인 만큼 국민주도 나쁘지 않은 매각방식"이라며 "호텔이나 시설관리에서 정부보다 민간이 잘하고 있고 1등인 공항이 계속 1등을 하기 위해서는 민간이 운영하는 것이 낫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홍 대표가 제안한 우리금융지주의 국민주 매각에 대한 곽 위원장의 생각은 인천공항공사 매각과 큰 차이를 보이지 않았다. 그는 "부실금융기관도 아닌데 사모펀드에 매각하는 것은 반대"라며 "지난 2005년부터 민영화하겠다며 안 할 이유와 부작용만 강조할 게 아니라 국민주 등 할 수 있는 방안을 찾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국민주 매각에 대해 청와대나 금융당국은 부정적인 입장이다. 헐값 매각 시비를 불러 일으킬 수 있다는 것이다. 곽 위원장도 국민주 매각의 부작용은 인정한다. 하지만 공적자금 회수 극대화, 금융산업 발전, 민영화라는 세가지 목적을 동시에 이룰 수 있는 방안을 찾기는 어렵다고 지적했다. 그는 "공적자금 극대화를 두고 매각방식을 정한다면 앞으로 10년이 지나도 매각이 어렵다"며 "우리은행이 준비한 국민주 방안도 있고 현 국민주 방식 자체도 기존주주의 주주가치 극대화에 부합한다면 아예 할 수 없는 방식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중소기업과 대기업의 상생을 산업 생태계의 틀에서 보는 곽 위원장은 초과이익공유제에 대해 어떻게 생각할까. 곽 위원장은 "우선 용어선택이 잘못됐다"고 말했다. 공유라는 말이 자본부의나 시장경제에서 벗어난 것처럼 보이다 보니 반박도 나온다는 것이다. 그는 "분명한 것은 초과이익공유제에 대한 논쟁이 동반성장의 취지를 훼손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인터뷰가 숨가쁘게 진행되는 가운데 말문을 이명박 정부의 현안으로 돌렸다. 정책 브레인으로서 최근 정부의 현안인 반값 등록금 등 복지 포퓰리즘 성격의 정책에 대한 의견을 물었다. 곽 위원장은 반값 등록금에 대해 "정부는 시장이 못해주는 것을 해야 한다. 지금 등록금은 등골이 휘는 게 아니라 낼 수가 없을 만큼 높다. 재정문제와 학교 구조조정에 대한 논쟁을 깬다면 충분히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선택적 복지와 보편적 복지에 대한 논쟁도 곽 위원장은 "싸울 거리가 아닌 것을 가지고 싸움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저출산 대책의 경우 당연히 보편적 복지로 가고 반값 아파트는 당연히 선택적 복지로 가는 것 아니냐"며 "재정의 틀 안에서 선택적 복지와 보편적 복지를 조합해야 한다"고 말했다. 곽 위원장은 "복지 논쟁에서 잊지 말아야 할 것은 복지는 시장경쟁에서 탈락한 사람을 보듬어 다시 시장경쟁에 들어가도록 하는 것"이라고 강조하며 "재정건전성에 대한 우려가 있지만 공기업 부채를 포함해도 재정건전성이 좋은 만큼 현 시점이 논쟁을 통해 복지를 확대할 수 있는 시기"라고 말했다. 곽 위원장은 1년 5개월 앞으로 다가온 대통령 선거에서 경제집중화와 사회양극화를 극복할 수 있는 비전을 내놓는 쪽이 승리할 것이라고 말한다. 그는 "변화와 개혁을 앞에 둔 한나라당의 노선 투쟁은 바람직하고 변화와 개혁이 국민들의 선택을 받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명박 정권 정책 브레인의 역할을 한 곽 위원장에게 이번 정권의 경험을 다음 정부에서 어떻게 활용할 생각이냐고 묻자 "정치 쉽지 않다"며 "학교로 돌아가 학생들에게 살아 있는 경험을 전해주고 싶다"고 말했다. 그러나 국정 콘텐츠와 경험이 풍부한 곽 위원장은 내년 총선, 대선을 앞두고 정치권에서 매력적인 카드로 떠오를 경우 본인의 이런 의향과 무관하게 또 다른 선택의 기로에 서게 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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