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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이 핵실험을 강행할 경우 이는 중국에 대한 도전으로 볼 수 있습니다."
이 발언은 얼핏 중국 외교 수장의 대북 경고로 보인다. 중국의 강한 영향력을 내세워 북한을 압박했다는 측면에서 충분히 개연성 있는 짐작이다.
하지만 이는 윤병세 외교부 장관이 7일(현지시간) 미국 뉴욕의 한국 유엔대표부에서 열린 기자회견장에서 한 말이다. 우리 외교장관이 전세계의 이목이 집중된 유엔에서 중국의 이름을 빌려 북한을 압박한 것이다.
윤 장관의 이날 발언은 우리의 대북 외교가 얼마만큼 중국에 의존하고 있는지를 잘 보여준다. 미국도 중국 측에 "북한을 압박하라"고 재차 압력을 가하는 만큼 별다른 대안이 없는 것을 감안하면 현실적인 압박으로도 보인다.
이런 정황을 감안하더라도 윤 장관의 발언은 주권 국가의 외교장관으로서 모양새가 좋지 않다. 사실상 우리 힘으로는 북한을 압박하기 힘들다는 약소국의 처지가 느껴지기 때문이다. 북한이 중국을 등에 업고 국제사회에서 '호가호위(狐假虎威)'한다는 비판이 나오고 있는 현실을 감안하면 우리라고 크게 다르지 않은 모습을 연출한 점에서도 그렇다.
중국이 자신들의 이해관계에 따라 움직이는 나라라는 현실 또한 윤 장관의 발언에 아쉬움을 느끼게 하는 부분이다. 중국은 지난해 11월에 이어도 주변 해역을 포함하는 방공식별구역(CADIZ)을 일방적으로 선포하는 등 자신들의 이해관계를 위해서는 언제든 우리와 척을 질 수 있다는 태도를 보이고 있다. 북중 관계가 한국전쟁 이후 60년 넘게 혈맹관계를 이어온 것을 감안하면 대북 압박을 위한 한중 공조에 대해 지나치게 자신하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도 여전하다.
윤 장관은 지난해 10월 국회 외통위에서 일본의 집단적 자위권 추진에 대한 입장을 모호하게 밝힌 직후 정청래 민주당 의원으로부터 "주권국가의 외교부 장관이 맞냐"는 비판을 들은 바 있다. 윤 장관이 공식석상에서 하는 발언은 외교적 변수를 다방면으로 고려한 뒤 나온 것이기는 하지만 유엔에서만큼은 더욱 신중할 필요가 있지 않았을까.
chopin@se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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