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4년 11월11일, 런던. 웨스트민스터(국회의사당)로 몰려든 노인 4,000여명이 목청을 높였다. ‘생존이 위태롭다. 노인연금을 올려라!’ 보수당 정부는 난감했다. 노인연금전국연합이라는 기치 아래 모인 노인들의 인상 요구폭이 너무 컸기 때문이다. 가뜩이나 경기침체로 재정이 어려운 형편에 독신 기준 주당 10실링인 노인연금을 17실링으로 올려달라는 요구는 받아들이기 힘들었다. 영국 정부는 크리스마스 이전까지 확실한 대안을 내놓겠다는 약속을 내놓았으나 시위대는 해산은커녕 의사당 중앙홀까지 점거해버렸다. 결국 특별위원회 설치와 추후 인상시 소급적용 등을 보장 받고야 노인 시위대는 농성을 풀었다. 영국은 이듬해 연금을 30%가량 올려 지급했으나 또 다른 문제가 생겼다. 재원이 없어 젊은층의 연금 적립액을 높이려 하자 노동자 계층이 반발하고 나선 것. 전후 영국에서 처음 일어난 연금 데모는 예고편이었다. 서유럽 대부분의 나라에서 노인들의 연금 인상 데모와 젊은층의 갹출액 상향 조정 항의 데모가 되풀이됐다. 연금제도를 개혁하려다 정권의 향방이 갈리는 경우도 적지않다. 요즘도 연금개혁은 각국 정부의 골칫거리다. 우리나라 역시 마찬가지다. 1988년 국민연금제도를 도입할 때 ‘소득의 3%만 내면 20년 후에는 표준소득의 70%를 연금으로 받을 수 있다’며 장밋빛 환상을 심어줬으나 급속한 노령화로 이행이 불가능하다. 1999년부터 60%로 떨어진 지급률조차 지키기 어려운 형편이다. 2048년께면 국민연금이 고갈된다는 추계도 있다. 미래의 위기에 대응하려면 ‘덜 받고 더 내는’ 구조로의 개혁이 필요하지만 국민적 합의를 이루기가 쉽지 않다. 수급권자가 훨씬 적은 공무원ㆍ군인연금도 제대로 개혁하지 못하는 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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