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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기업, 외풍에 폐쇄적 지배구조 바꾸나

캘퍼스·베일리길퍼드 등 20개 해외 대형기관투자가

"사외이사 대폭 늘려라" 서한

주주 중심 경영 재편 불가피


미국 최대 공적연금인 캘퍼스(캘리포니아공무원퇴직연금·CalPERS) 등 목소리 크기로 유명한 해외 대형 기관투자가들이 일본 기업들에 "사외이사를 늘리라"며 압력을 가하기 시작했다. 아베 신조 총리가 일본 경제 성장전략의 일환으로 기업 거버넌스 개혁을 추진하는 가운데 외국인 주주들도 지배구조 개선을 본격적으로 요구하기 시작하는 등 외풍(外風)이 거세지면서 폐쇄적 보수경영으로 악명 높은 일본 기업들의 변신이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은 캘퍼스와 영국 자산운용사인 베일리길퍼드, 캐나다 온타리오주교원연금기금 등 20개 해외 기관투자가들이 지난달 도요타자동차와 NTT도코모·미쓰비시UFJ파이낸셜그룹 등 일본의 주요 기업들에 사외이사 수 확충을 요구하는 서한을 보냈다고 5일 보도했다. 서한을 받은 것은 주로 대기업들이 상장된 도쿄증권거래소 1부 소속기업 가운데 시가총액이 크고 사외이사 비중이 낮은 33개사다. 이들 해외 투자가는 해당 기업들에 대해 독립성이 높은 사외이사 비중을 향후 3년 내 3분의1 이상으로 끌어올릴 것을 요구하면서 제시한 목표를 달성하지 못할 경우 2017회계연도 주주총회에서 이사 선임안에 반대하는 방안도 검토하겠다고 으름장을 놓았다.

현재 도쿄거래소 1부 상장사 가운데 사외이사를 둔 기업 비중은 62.3%에 달하지만 도요타자동차의 경우 전체 이사 수 15명 가운데 사외이사가 3명에 그치는 등 회사당 사외이사 수는 서구 기업들에 비해 턱없이 적다. 서구에서는 사외이사가 전체의 절반 이상인 기업이 전체의 90%나 된다.

일본의 주주 조사업체인 아이알재팬에 따르면 이들 20개 기관투자가가 일본 주식에 투자한 금액은 총 7조5,000억엔(약 74조7,000억원)에 달한다. 이는 도쿄증권거래소 1부 시가총액의 2%에 조금 못 미치는 규모로 해당 기업들의 의결권에 적잖은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신문은 지적했다.



일본 기업들의 지배구조를 바꿔놓으려고 벼르는 것은 해외 주주들만이 아니다. 아베 정권은 '아베노믹스'로 경영환경이 좋아졌는데도 현금을 쌓아두기만 하는 기업들의 보수적 경영관행을 타파하기 위한 방안으로 상장기업의 사외이사제 도입을 의무화할 방침이다. 아베 총리는 지난 3일 일본의 대표 재계단체인 게이단렌 정기총회에서 기업의 과도한 내부유보를 성장으로 돌리기 위해 이달 중 발표할 성장전략에 기업 거버넌스 관련 지침을 포함할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자기자본이익률이 서구 기업들의 절반 수준인 8%에 그치는 일본 기업들의 비효율적 경영체질을 개선하기 위해 외부 입김을 강화해야겠다는 것이다. 이와 관련해 세계 최대 규모의 연기금인 일본공적연금펀드(GPIF)도 아베 정권의 요청에 따라 투자 대상 기업의 경영에 대한 종전의 '무간섭주의'에서 벗어나 주주권을 강화하기로 했다.

주주 중심으로 경영활동을 하는 서구 기업들과 달리 '사내 논리'에 따라 의사결정이 이뤄지는 일본 기업들은 폐쇄적 지배구조에서 비롯되는 적잖은 문제에 직면해왔다. 2011년 불거진 올림푸스의 분식회계 문제나 조직폭력단 대출로 물의를 빚은 미즈호파이낸셜그룹 등 기업들의 대형 스캔들도 주로 일본 특유의 지배구조에서 비롯된 것으로 지적돼왔다. 비수익사업 철수와 설비투자 결정 등을 신속히 내리지 못하는 것도 사내 논리에 함몰된 일본 기업들의 특성 때문이라는 지적이 많다.

그렇기 때문에 일본 정부 내에서는 물론 시장에서도 일본의 폐쇄적 기업 지배구조가 바뀔 경우 주주가치 우선경영 기대감으로 일본에 대한 해외자본 유입이 활성화될 것이라는 기대가 커지고 있다. 특히 주주행동주의로 유명한 캘퍼스는 이번에 상장사들 외에 금융청이나 경제산업성·거래소 등에도 같은 내용의 서한을 보낸 것으로 알려져 일본 정부와 해외 투자가들의 기업들에 대한 합동공세로 기업들의 변화속도가 빨라질 가능성이 크다고 니혼게이자이신문은 내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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