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히 각종 경제법안과 내년 예산안 처리에 대해서는 절박함과 진정성이 엿보였다. 바로 이런 점에서 박 대통령의 시정연설은 아쉬움을 남겼다. 대통령의 의지를 알리는 대목에서는 더할 나위 없이 훌륭했지만 정작 국정 파트너인 야당을 생산적 논의의 장으로 끌어들일 수 있는 제언이나 제안은 없었기 때문이다.
시정연설을 앞두고 언론이 보수와 진로를 막론하고 정국의 분수령이 될 것이라며 결단을 촉구했던 점에 비춰 실망스럽다. 모처럼의 기회도 날아가는 분위기다. 여야의 평가도 극과 극을 달렸다. 정국은 여야의 극한대치가 얼마나 더 이어질지 모르는 상황에 빠져들고 있다. 당장 법인카드 유용 등 의혹을 사고 있는 국무위원 후보자들의 임명동의안 처리를 놓고 대립할 게 뻔하다.
시정연설을 마친 박 대통령이 중앙통로의 새누리당 의원들과 반갑게 악수하는 모습도 나쁘지 않았지만 기왕이면 민주당 의석으로 이동해 인사를 나눴으면 좋았을 것이라는 아쉬움도 남는다. 더욱이 의사당 밖에서 벌어진 민주당 의원들과 청와대 직원 간 충돌도 시정연설의 의미와 진정성을 깎아먹었다.
박 대통령은 여야 합의를 강조했지만 정국운영의 축이 청와대가 아니라 국회에 있다고 생각하는 국민은 많지 않다. 이런 점에서 집권 여당인 새누리당이 맡아야 할 책무가 커졌다. 새누리당이 실권을 갖고 주도적으로 나서야 정국 현안이 풀려나갈 수 있다. 민주당도 여권과 견해차가 크지 않은 경제입법에 대해서는 부분적이나마 전향적인 자세를 보일 필요가 있다. 이마저도 어렵다면 정국은 더욱 얼어붙을 것이고, 한국호의 앞날은 안개로 뒤덮인 고층빌딩 숲을 헤매는 헬기와 다름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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