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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경제소사] <1387> 싱코데마요
입력2009-05-04 18:09:16
수정
2009.05.04 18:09:16
해마다 이맘때면 멕시코는 축제 분위기에 젖는다. 미국 남부지역도 마찬가지. 화려한 멕시코 민속의상을 입은 밴드가 시가를 누비고 산해진미가 관광객을 부른다. 축제의 이름은 ‘싱코 데 마요(Cinco De Mayo)’.
스페인어로 ‘5월5일’을 뜻하는 싱코 데 마요는 무엇을 기념하는 축제일까. 어린이날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 기원은 1862년 5월5일, 멕시코 중남부 푸에블라에서 일어난 프랑스 침략군과의 전투. 병력과 장비의 열세에도 프랑스군을 무찌른 승전기념일이 축제로 굳어진 게 싱코 데 마요다.
프랑스가 멕시코를 침범한 명분은 구상권 행사. 멕시코 제1제정을 무너뜨리고 들어선 공화정이 경제난을 맞아 1861년 채무불이행과 원금 및 이자의 2년간 지급정지를 선언하자 야심가 나폴레옹 3세는 기다렸다는 듯이 군대를 상륙시켰다.
프랑스가 가진 채권은 300만페소. 멕시코의 옛 종주국인 스페인은 물론 영국의 채권 6,900만페소보다 훨씬 적었지만 군대를 보내 발언권 강화를 노렸다. 중남미에 식민거점을 마련하려던 프랑스의 야심은 푸에블라에서 꺾였다. 정규군 6,040명에 신형 대포 12문을 갖춘 프랑스군이 구식무기로 무장한 4,500여 멕시코 민병과 맞붙은 결과는 참패. 462명 전사, 300명 부상에 8명이 포로로 잡혔다. 멕시코의 피해는 83명 전사, 141명 부상에 그쳤다.
프랑스는 병력을 증파해 1864년 나폴레옹의 피가 섞인 합스부르크가의 막시밀리안 1세를 황제로 내세운 제2제정을 수립했으나 1867년 철수하고 말았다. 남북전쟁을 끝낸 미국의 좌시하지 않겠다는 압력도 작용했지만 5년간 50만명이 희생될 만큼 끈질겼던 멕시코 민중의 저항 때문이다. 싱코 데 마요 축제에는 조국을 구해냈다는 긍지가 깔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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