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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멀고 먼 기초과학 강국의 꿈

원은일 고려대 물리학과 교수


지난 3월18일 미국 하버드-스미소니언 천체물리센터에서 4명의 과학자들이 기자회견을 열었다. 인플레이션 우주론이라고 알려진 태초의 우주 급팽창에 대한 직접적인 증거를 처음 포착했음을 알리는 자리였다.

현대 우주론에는 우리가 살고 있는 우주가 빅뱅으로 시작한 지 얼마 지나지 않은 매우 짧은 순간에 초기 우주의 크기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서 빛의 속도보다 빠르게 우주를 이루는 3차원 공간이 팽창했던 시기를 겪었다는 사실상 믿기 어려운 인플레이션 우주론이라는 가설이 존재한다. 기자회견의 내용은 인플레이션 우주론에 대한 직접적인 실험적 증거를 처음으로 관찰했다는 것이다. 만일 이 발견이 사실이라면 매우 중요한 인류의 업적에 해당되는 것이다.

선진국은 먼 미래보고 집중투자

본 실험은 우주에서 지구로 전달되는 빛, 즉 우주배경복사를 측정하는 것으로 남극에 설치된 지상망원경을 통해 실행됐다. 사실 선진국들은 이번 실험과 같은 망원경들을 이미 남극에 설치해 경쟁적으로 실험을 진행해왔다. 우주배경복사의 근원에 대한 과학적 호기심으로 이미 수십년 전부터 지상 또는 인공위성을 통해 관찰했으며 지난 1978년과 2006년에 걸쳐 두 번의 노벨 물리학상 수상자가 나오기도 했다. 만일 이번 발표가 사실로 판명된다면 또 한 번의 노벨상을 수상할 가능성이 커진다. 다만 사실 판명 여부는 독립적인 다른 실험에 의한 검증이 필수적일 것이다.

물론 순수 기초과학 실험은 우리 일상생활과는 직접적인 관계가 없다. 이 실험의 직접적인 결과로 당장 우리의 생활이 윤택해지지도 않을 뿐더러 경제발전에 이바지하는 일도 당분간은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선진국에서 이러한 기초 중의 기초과학에 많은 투자를 하는 이유는 무엇인지 한 번쯤 고민을 해볼 필요가 있다. 물론 인류의 지적 호기심 충족이라 할 수 있지만 소중한 국민의 세금을 사용하는 순수 기초과학 연구 목적이 그뿐이면 좀 부족한 감을 느낄 것이다.



순수 기초과학의 역사를 돌이켜 보면 나머지 답의 일부를 알 수 있다. 현대 문명에 빼놓을 수 없는 트랜지스터의 발명, 그리고 레이저 개발이 그 대표적인 예다. 트랜지스터가 처음 만들어졌을 때 오늘날과 같이 우리의 문명생활을 지배하리라는 생각은 쉽게 하지 못했을 것이다. 또 아인슈타인이 창시한 일반상대론은 당시에는 이를 이해하는 사람이 지구상에 5명밖에 없었다는 일화처럼 매우 난해한 이론이었고 우리의 일상생활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을 것이라고 했지만 오늘날 우리는 휴대폰에 GPS 혹은 범지구위치결정시스템을 가지고 다니면서 매일 일반상대성이론의 결과를 사용한다. 일반상대성이론에 의하면 휘어진 공간에서 시간이 더 느리게 흘러가기 때문에 인공위성에서 송출되는 시간 정보를 매번 보정해야 하는 작업이 우리의 휴대폰에서 반복적으로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긴 호흡으로 순수과학 지원 넓혀야

이번 우주배경복사 측정실험 경쟁에 이웃 일본도 최근 뛰어들었다. 올해 지상 망원경 건설 완공을 목표로 현재 쓰쿠바 시에 있는 국립가속기연구소가 바쁘게 연구하고 있으며 필자도 이 실험연구에 참가하고 있다. 다행스러운 점은 필자가 한국연구재단의 일반연구자지원사업을 통해 이 실험연구를 수행하고 있다는 점이다. 순수 기초과학 연구에 지원을 받는 입장에서 이마저도 없는 환경에서 묵묵히 기초과학 연구를 수행하는 많은 연구자들이 존경스럽고 또 죄송스러울 따름이다. 우주배경복사 측정 실험이 과연 미래 우리의 일상생활을 바꿀 수 있을지 지금으로서는 알 수 없다. 다만 풀뿌리 기초과학에 대한 최소한의 투자 없이는 그와 같은 질문조차 할 수도 없게 된다는 점은 명확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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