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일 자정부터 '불금(불타는 금요일)'을 앞당겨 거리를 온통 붉음으로 물들인 시민들은 승부를 떠나 월드컵이라는 축제의 순간을 즐겼다. 3골 이상의 차이로 이겨야 16강이 눈에 보이는 상황이었지만 시민들은 조급해하지 않았다. 잘 연결된 패스 하나에도, 골로 연결되지 않은 슈팅에도 "대~한민국" 함성이 여기저기서 터져나왔다. 전반전 초반부터 태극전사들이 경기 주도권을 잡으며 슈팅 기회를 늘리자 응원 분위기는 한껏 고조됐다. 경기 화면으로부터 등을 돌리고 있던 경찰도 여러 번 동요의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 특히 전반 44분에 벨기에 선수 스테번 드푸르가 김신욱 선수의 발을 고의로 밟아 레드카드를 받자 여기저기서 함성이 터져나왔다. 마지막 경기가 될 것 같아 친구와 함께 거리 응원에 나섰다는 조준호(25)씨는 "하루 앞당겨 불금 스타트했다"며 "(전반) 선수들 공격이 너무 좋아서 지더라도 여한이 없다"고 기쁨을 표현했다. 월드컵 경기를 즐기러 미국 LA에서 온 봉진우(19)군도 "4년에 단 한 번 있는 축제라 생각하며 16강과 상관없이 거리 응원에 나섰다"며 "지금 여기에 있다는 것 자체가 축제 아니냐"고 반문했다.
아쉬움은 컸지만 한국 축구의 새로운 희망도 발견했다. 정성룡을 대신해 골키퍼로 투입된 김승규가 위험한 고비를 여러 차례 넘기자 시민들은 김승규를 연호했다. 이리저리 활보하며 벨기에 선수들을 압박하는 손흥민과 김신욱 등 우리 선수들에게 끝없는 응원을 보냈다. 시민들은 후반 22분 얀 페르통언 선수가 우리 골대에 브라주카를 꽂아넣자 순간 좌절감으로 말을 잃었던 시민들은 이내 "그래도 잘했다"고 태극전사를 격려했다. 직장인 박이지(26)씨는 "16강전 거리 응원에 참여할 수 없다는 게 아쉽지만 우리 선수들에게서 가능성을 봤다"며 "다음 월드컵에서 이 선수들이 이끌 경기가 벌써 기대된다"고 기대감을 표현했다.
이날 광화문 광장에서 응원한 벨기에 출신 오우레시(24)씨는 "벨기에 입장에서는 긴장할 만한 상대를 만났다"며 "러시아나 알제리와의 경기보다 훨씬 더 즐겁고 막상막하의 경기를 보여줬다"고 전했다. 그는 "오늘 정말 즐길 수 있었다"며 "한국의 응원문화가 날 감동시켰다"고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시민들은 깨끗한 뒷모습을 남겼다. 알제리전 이후 아름답지 않은 뒷모습으로 시민의식에 대해 많은 지적이 있었지만 이날 거리 응원을 나선 시민들은 말끔한 자리를 남기고 떠났다. 거리 뒷정리를 도맡는 클린봉사단에 참가한 대학생 추진주(21)씨는 "지난 알제리전 같은 경우는 져서 아쉬운 시민들이 그대로 떠나 정리하는 데 어려움을 겪었지만 오늘은 시민들이 나서서 정리를 잘했다"며 고마움을 표시했다.
이날 광화문에 1만5,000명, 영동대로에 3만2,000명이 모인 시민들은 저마다의 여운을 갖고 4년 뒤를 기약하며 일상으로 돌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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