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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요일 아침에] 믿음 안가는 한은

금 투자로 수천억 평가손 "큰 의미 없다" 평가절하<br>그 실력으론 신뢰 못얻어… 통렬하게 반성·분발해야


한국은행이 공격적인 금 매입에 나섰다가 수천억원의 평가손실을 입어 곤욕을 치르고 있다. 한은의 금 매입은 외환보유액 운용 상품을 다변화해 금융시장 위기와 인플레이션에 따른 피해를 줄이려는 보험 성격이 강하다. 또 영구보관 성격이어서 평가손실이 실제 손실로 현실화하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한참 비쌀 때 사서 상투를 잡았다는 비판에서 자유로울순 없다. 국민연금에서 이런 일이 벌어졌다면 온 나라가 들끓고 기금운용 책임자 등도 자리를 보전하기 어려울 것이다. 그런데도 한은 관계자가 "외환투자 다변화 차원에서 장기적 안목으로 금을 매입하는 것이기 때문에 금값 움직임에 크게 신경 쓰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니 상식적으로 납득이 가지 않는다. 적어도 그런 식의 발언을 해선 안 된다.

한은이 지난해 11월 이후 온스당 평균 1,509.20달러에 사들인 금의 경우 8% 안팎의 평가손실을 본 것으로 추산된다. 국제원자재시장에서 15일까지 2거래일 동안 200달러 이상 하락해 시장을 심리적 공황상태에 빠트렸던 금값은 16일 6월물 기준으로 26.30달러(1.9%) 오른 1,387.30달러에 장을 마쳤다. 다행이다.

한은은 김중수 총재 취임 1년여 뒤인 2011년 7월부터 올해 2월까지 다섯 차례에 걸쳐 47억1,000만달러로 금 90톤을 사들였다. 이는 전체 금 보유량 104.4톤의 86%에 이른다. 전체 외화보유액에서 금이 차지하는 비율도 0.03%에서 1.5%(장부가액 기준)로 늘어났다. 김 총재는 취임 초기엔 금 투자에 부정적이었지만 외환보유액이 3,000억달러가 넘어서자 투자 다변화 차원에서 금 투자에 적극 나섰다. 그 전에는 김 총재와 한은 모두 금 가격의 변동성이 심한데다 채권 등 금융상품과 달리 이자도 붙지 않아 투자대상으로 적절치 않다는 생각이 강했다고 한다. 한은은 금 보유량이 절대적으로 적어 확충할 필요가 있다는 입장이다. 1월 시가 기준으로 일본이 외환보유액의 3.2%, 인도가 9.9%, 대만이 5.6%를 금으로 보유하고 있는 만큼 추가 매입이 불가피하다는 것이다.

하지만 미국 증시에 유동자금이 몰리면서 미 달러화 가치가 상승세를 타고 세계적인 경기침체로 원자재 수요 감소가 예상돼 금값이 다시 오를 가능성은 낮다는 게 대체적인 분석이다. 키프로스에 이어 이탈리아 등 유럽 재정위기국들이 부채를 줄이기 위해 금을 내다팔 것이라는 우려도 금값의 발목을 잡고 있다. 골드만삭스는 당초 온스당 1,610달러로 내다봤던 올해 평균 금값 전망치를 1,545달러로 낮추고 내년 전망치도 1,490달러에서 1,350달러로 낮췄다.



2001년 이후 강세를 띠던 금값은 2011년 온스당 1,920.30달러로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 미국발 금융위기와 유럽발 재정위기 등으로 세계경제가 혼란에 빠지면서 안전자산으로 여겨졌기 때문이다. 중국이 국제 기축통화를 놓고 미국 달러화와 통화전쟁을 벌일 것이라는 예측도 한몫했었다.

금값 폭락으로 손해를 보는 것은 한은만이 아니다. 전세계 금 유통량의 19%(3만1,695톤)를 보유한 전세계 중앙은행들과 국제통화기금(IMF)이 5,600억달러(약 626조원)의 평가손실을 봤다고 한다. 이들 기관이 지난해 늘린 금 보유량만 534.6톤으로 1964년 이후 최대다.

문제는 한은이 금값이 쌀 때는 지켜만 보다가 한참 비쌀 때 사들였다는 점이다. 시장에서는 한은의 금 평균 매입단가를 온스당 1,600달러 수준으로 추정하고 있다. 골드만삭스의 예상이 맞아떨어진다면 한은의 장부상 평가손은 더욱 커질 수밖에 없다. 금값 예측과 투자에 실패한 한은이 국내외 경기동향을 제대로 파악해 기준금리ㆍ통화량 등을 조절하고 물가ㆍ외환보유액을 잘 관리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한은과 김 총재의 통렬한 반성과 분발이 필요한 까닭이다. 부실투자 책임을 회피한 채 "금값 변동에 따른 단기적 손익은 큰 의미가 없다"고 강변해선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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