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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 칼럼/4월 15일] 시장과 反시장 사이
입력2008-04-14 17:01:58
수정
2008.04.14 17:01:58
합법이든 불법이든 파업은 노동자들의 마지막 수단이다. 사용자와 적대적인 관계로 대립되면서 협상과 대화가 막혔을 때 파업은 나타난다.
지난 3월 국제 원자재가 인상의 여파로 촉발된 주물업계의 대기업에 대한 납품중단은 사실 일종의 파업으로 나타난 새로운 행태의 실력행사다. 주물에 이어 레미콘ㆍ아스콘ㆍ골판지 업계의 잇단 가세는 대기업에 대한 구조적 불만을 표출한 것이다. 더욱이 이런 불만은 아직 잠복된 불씨 형태로 남아 있기 때문에 앞으로 언제 또 터질지 모르는 상황이다.
노동자도 아닌 한 기업의 대표들이 그들이 가장 혐오하는 단체행동인 납품중단이라는 초유의 사건을 과감히 실행에 옮긴 이유는 무엇일까. 행동의 주축이 된 조합은 사실상 친목모임에 불과한 조직이다. 이런 조직이 실력행사까지 할 수 있는 힘을 어떻게 모을 수 있을까. 더욱이 그들의 생명줄을 쥐고 있는 대기업을 상대로 집단도전에 나섰다면 그만큼 극한 상황에 도달했다는 것으로밖에 이해할 수 없다.
어느날 갑자기 천정부지로 치솟기 시작한 원자재값 상승은 중소기업들을 공황상태로 만들었다. 전혀 예측이 불가능했기 때문에 그야말로 속수무책일 수밖에 없었다. 고철ㆍ시멘트 등 원자재값은 배로 뛰었는데 대기업 납품단가는 제자리걸음에 머물렀고 공장을 돌리면 돌릴수록 남는 것은 적자뿐이었다. 한 주물업체 사장이 한 달에 집에 가져가는 돈이 200만원 정도였다니 가히 짐작할 만하다.
대기업과 하청업체(협력업체라는 고상한 언어로 포장돼 있지만)의 관계는 사실 사용자와 노동자의 관계와 다름없다. 하청업체는 대기업의 의지대로 움직일 수밖에 없고 기술개발이나 자체 경영계획 수립은 그림의 떡에 불과하다. 공장을 유지할 정도의 이윤을 남겨주는 것이 마치 대기업의 시혜처럼 보일 정도다.
하지만 이런 상황을 십분 이해한다손 치더라도 중소기업 사장은 분명 경영자다. 경영자에게는 기업활동의 책임이 따른다. 사실 주물파동의 이면에는 호황기간 동안의 물량경쟁에 따른 과잉생산이 있다는 지적도 있다. 그동안 ‘제 살 깎기’식 덤핑경쟁이 이번 사태의 원인이 된 셈이다.
이러한 중소기업인들이 주장하는 이번 사태 해결책의 핵심은 납품단가 연동제 도입이다. 정부가 민간기업의 납품거래가격 결정에 개입하라는 얘기다. 납품단가 연동제가 법제화되지 않으면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 불공정 관행은 근절되지 않고 결국 피해는 중소기업이 입을 수밖에 없다는 논리다.
대기업들은 시장원리에 위배된다고 반대하고 나섰다. 계약자유의 원칙을 저해하고 시장질서를 왜곡할 우려가 있다고 말한다. 표준하도급계약서 등 현재 제도가 잘 지켜질 수 있도록 효과적인 인센티브를 제공하면 사태해결이 가능하다는 주장이다.
납품단가 연동제는 가격상승을 전제로 한다. 원자재값 상승분이 기업의 노력은 전혀 없이 그대로 소비자에게 전가된다면 기업의 역할은 과연 무엇일지 의문이다. 경제에도 악영향이다. 원자재값 상승, 납품가 인상, 소비자가격 상승, 소비위축 등의 악순환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고질적인 대기업과 하청업계와의 갈등은 단순한 ‘시장주의’와 ‘정부 간섭’의 문제가 아니다. 납품단가 연동제가 법제화된다고 ‘갑’과 ‘을’의 관계가 해소될 수 있을까. 사실 우리나라의 중소기업 정책은 세계 어디에 내놓아도 손색이 없을 정도다. 결국 제도의 문제가 아니다.
대기업은 중소기업들이 함께 살아갈 수밖에 없는 대상이라는 인식을 갖고 그들의 경쟁력 제고를 위해 힘써야 한다. 중소기업들도 눈앞의 이익에만 급급하지 말고 자생적인 경쟁력을 갖추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경쟁력 없는 기업은 도태될 수밖에 없다.
납품단가 연동제는 시장ㆍ반시장이라는 논리의 대립이 아니라 서로 고통을 분담하면서 함께 살아가는 상생에서 비롯돼야 한다. 기업들의 노력 없이 그 고통을 소비자에게 전가해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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