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자금시장이 다시 요동을 치고 있다. 금융위기이후 실물경제의 침체 속도가 빨라지면서 투자자들은 손해를 볼 수 있는 주식 등 위험 자산을 피해 이자 소득을 사실상 포기해 가며 미 재무부채권(TB)에 극단적인 투자 쏠림 현상을 보이기 시작했다. 반대로 기업의 부도 위험도는 기록적으로 높아지고 있고, 23 거래일 연속 하락하던 리보(런던은행간 금리)가 내리 3일째 상승세를 이어가고 있다. 자금시장의 동요는 미국과 영국 등 주요 선진국의 디플레이션 공포가 점차 현실화하고 있는데다 자동차 '빅3'의 해법 지연과 씨티그룹의 위기설 등이 겹친 데서 비롯되고 있다. 글로벌 금융위기의 진원지인 미 자금시장의 동요는 7,000억 달러 규모의 미 재무부 구제금융의 약발이 제한적이며, 금융위기의 끝이 아직 멀었다는 의미로 풀이된다. 블룸버그통신은 유럽계 채권전략가의 발언을 인용, "시장이 다시 위기 모드로 되돌아갔다"고 전했다. 안전 자산에 대한 투자 쏠림 현상은 지난 9월 리먼브러더스 붕괴 직후보다 더 기승을 부리고 있다. 3개월물 미 국채 수익률은 0.02%를 기록, 2차 대전이후 최저치를 기록했다. 주식 등 위험자산에 사들여 손실을 입을 것으로 우려한 투자자들이 단기자금에 대한 이자소득을 포기하고서 원금을 지키겠다며 극단적인 안전자산 투자 패턴을 보인 것이다. 미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의 기준 금리 변동에 감한 2년 물은 0.97%를 기록, 사상 처음으로 0%대에 진입했다. 올들어 2년 물 수익률 최고점은 베어스턴스 구제금융으로 자금시장 경색이 풀리던 지난 6월 3.11%였다. 장기 채권인 30년물의 경우 이날 하루 폭으로는 사상 최대 낙폭인 0.46% 폭락한 3.46%를 기록했다. 이는 지난 1977년 정기 거래되기 시작한 후 최저치다. 이에 비해 국제금융거래의 지표 금리인 리보는 소폭 오른 2.09%를 기록했다. 리보는 헨리 폴슨 재무장관이 구제금융 신규 집행을 중단하고 잔여액 4,100억 달러 운용을 차기 정부의 몫으로 돌리겠다고 발표한 이후 3일 동안 0.11%포인트 올랐다. 이에 따라 신용 경색의 척도 지표로 꼽히는 TED 스프레드(리보와 미 국채수익률격차)는 2%포인트를 웃돌았다. 자금 시장이 정상이면 두 금리 격차는 0.5%포인트에 그친다. 리보 상승세 반전은 구제금융 집행 중단으로 부실 자산이 많은 상업은행에 대한 불안감을 반영한 것으로 해석되고 있다. 씨티그룹은 이날 개인 최대 주주인 알 왈리드 사우디아라비아 왕세자의 추가 투자 방침에도 불구하고 산하 구조화투자전문회사(SIV)의 부실자산 170억 달러를 흡수하겠다는 전날 발표에 위기설이 고조되고 있다. 특히 미 재무부가 구제 금융 규모를 1조2,000억 달러로 늘려야 할 것이라는 월가 리포트까지 나와 신용 위기에 대한 불안감을 증폭시켰다. 미 의회가 자동차 빅3에 대한 유동성지원 법안처리를 다음달로 연기되고 미 2위 백화점인 메이시가 소비불황으로 회사채 등급이 정크본드 수준으로 전락한 것도 시장의 악재로 꼽힌다. 이와 관련 북미지역 125개 기업의 채권 부도위험도를 추적하는 CDX북미지수는 연 이틀째 사상 최고치를 갈아치웠다. 개리 폴락 도이치뱅크 채권총괄 책임자는 "워싱턴 정치권이 미적대는 바람에 금융 시스템이 계속 붕괴되고 있다"며 "시장을 구할 백기사가 나타나지 않을 것이라는 우려가 확산되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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