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나라 때 임제종의 공안집으로 유명한 벽암록에는 줄탁동시(啐啄同時)라는 한자성어가 나온다. 어미닭이 알을 품고 있다가 때가 되면 병아리가 안에서 껍질을 쪼는데 이것을 '줄'이라 하며 어미닭이 그 소리에 반응해 바깥에서 껍질을 쪼는 것을 '탁'이라고 한다. 줄과 탁이 동시에 맞아 떨어지게 되면 병아리는 드디어 알을 깨고 세상에 나오게 되는 것이다. 이렇듯 줄탁동시란 생명이라는 가치는 내부적 역량과 외부적 환경이 적절히 조화돼 창조되는 것을 의미한다.
기업경영에서 있어서도 줄탁동시라는 한자성어를 응용해볼 수 있다. 이를 위해서는 다음과 같이 갖춰야 할 전제조건이 있다.
첫 번째 조건은 병아리가 안쪽에서 먼저 껍질을 쪼듯이 기업구성원에게는 내적 역량의 성숙과 함께 자발적으로 행동하는 것이 필요하다. 임원이면 임원답게, 직원이면 직원답게 스스로 먼저 고민하고 헌신해 변화와 혁신을 통해 기업문화를 창달해나가야 한다는 것이다.
둘째 조건은 어미닭이 알의 안에서 쪼는 소리를 귀 기울여 듣듯이 누구나 경청과 소통의 원활한 커뮤니케이션이 필요하다. 상대방의 말을 진지하게 듣지 않기 때문에 문제가 해결되지 않고 분란만 일으키는 경우를 종종 볼 수 있다. 서로 의견을 나누고 투명하게 소통하면 상대방을 이해하게 되고 신뢰감이 쌓이기 때문에 힘을 합쳐 조화롭게 일할 수 있게 된다.
셋째 조건은 병아리의 줄과 어미닭의 탁이 같은 시각에 행해지듯 '동시'라는 조건을 충족하는 것이 필요하다. 기업이 아무리 좋은 제안과 의견을 내놓더라도 고객과 사회가 그에 상응하는 변화와 혁신을 이루지 못한다면 무용지물이 된다. 반대로 사회와 고객이 아무리 좋은 제안과 의견을 제시하더라도 기업이 그에 상응한 혁신과 가치를 창조하지 못한다면 무의미한 일이 되고 만다. 상대방의 요구와 제안에 대해 동시에 가치를 인정할 때만 최선의 결과가 나타난다. 마찬가지로 기업이 변화와 혁신을 통해 새롭고 개선된 서비스를 제공할 때 시장과 고객은 열렬한 지지를 보내줄 것이다.
현대의 많은 기업들은 인간 개인의 경험을 사고의 중심에 놓고 전략을 설계하고 실행하면서 궁극적으로 임직원뿐만 아니라 모든 이해관계자들과 공동의 가치를 나누려고 고심한다. 필자가 재직하는 한국예탁결제원의 경우에도 자본시장의 모든 참가자와 함께 발전할 수 있는 공동가치를 창조하는 기업으로 확고한 미래상을 꾸준히 다져나가기 위해 줄탁동시라는 한자성어를 격언 삼아 노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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