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연예인들의 군대 체험을 리얼하게 그려낸 예능 방송을 재미있게 봤다. 열과 오를 맞추는 제식훈련 내용이었는데 교관에게 '기준'으로 지목 받은 한 개그맨이 계속 틀려서 소대 전체가 우왕좌왕하는 우스꽝스러운 광경이 반복됐다. 오른손을 들다가 왼손을 들기도 하고 복창도 제멋대로였고 기준이 움직이기도 하고…. 고생깨나 했던 당사자는 이런 생각을 했을지도 모르겠다. "아~ 기준이 뭐라고."
뜬금없이 이런 얘기를 꺼낸 것은 요새 기준의 중요성에 대해 생각해볼 기회가 많아져서다.
명확하게 정의하기는 어렵지만 기준이라는 말 그대로 기본이 되는 표준이다. 올바른 기준이 있으면 정확한 판단을 하게 되고 잘못된 기준을 세우면 잘못된 판단을 내리게 된다. 그래서 누구나, 적어도 상당수가 납득할 만한 보편타당한 기준이 필요한 것이다.
하지만 우리 사회는 이 같은 상식과는 점점 동떨어져 가는 듯하다. 큰 논란이 일고 있는 백수오 파문을 보자. 백수오의 최대 판매처인 홈쇼핑업계는 지금 벌집을 쑤셔놓은 듯 정신이 없다. 소비자원이 내츄럴엔도텍의 백수오 원료에 독성 있는 이엽우피소가 혼합됐다며 백수오 제품의 문제점을 지적했고 불안감을 느낀 소비자들이 일제히 환불을 요구하고 나섰기 때문이다.
하지만 대다수 홈쇼핑들은 남아 있는 제품만 보상해주겠다며 사실상 이를 거부했다. 바로 합당한 기준이 없다는 이유에서다. 실제 현 시점에서 시중에 판매된 '가짜 백수오'는 없다. 소비자원이 밝혀낸 문제의 원재료는 제품화되지 않았고 2~3년간 팔린 제품에 대해서는 아직 명확하게 밝혀진 게 없다. 소비자원조차 문제가 있지 않을까 추정할 뿐이다.
본질 외면한 원칙에 기업만 희생
홈쇼핑 편을 들겠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다만 사상 초유의 일인만큼 검찰이나 식품의약품안전처 등 정부가 판단한 기준에 따르겠으니 잠시만 기다려달라는 업계의 입장도 일리 있다는 생각이다. "잘잘못을 가리지도 않은 상황에서 기업들의 호주머니를 쌈짓돈처럼 여기고 정서법을 앞세운 무조건적인 요구를 수용하는 것은 기업 주주 입장에서 배임일 수도 있고 잘못된 선례를 남길 수도 있다"는 한 홈쇼핑 관계자의 항변은 정당한 기준의 중요성을 다시 한 번 곱씹게 한다.
하나의 사례에 불과하지만 유난히 기업을 대하는 상식적이지 못한 기준은 우리 주위에 너무도 많다. 동반성장위원회가 골목빵집을 보호하겠다며 기업의 베이커리 가맹점 사업을 제한한 규제가 대표적이다. 하지만 족쇄를 찬 수천여개 SPC의 파리바게뜨와 CJ푸드빌의 뚜레쥬르 가맹점주들 역시 1만여명의 개인제과점주와 다름없는 동네에서 빵집하는 자영업자다. 그래서 대기업의 간판을 달았다는, 달고자 하는 이유로 이들 가맹점주에게만 희생을 강요하고 제과업이 주력인 기업들에는 사업 후퇴를 종용하는 기준은 형평성에 문제가 있다는 잡음이 끊이지 않는다. 한 베이커리의 대기업 관계자는 "기존 가맹점주의 점포 이전까지 제한하는 것은 가맹점주의 권익을 심각하게 침해하는 것"이라며 "곧 3년의 권고 기간이 끝나는데 이번에는 과거와 같은 일방적인 잣대는 결코 수용하기 어렵다"고 선을 그었다.
이런 맥락에서 보면 대기업 계열의 마트나 슈퍼도 불합리한 기준으로 고통을 받고 있다. 다분히 소상공인들의 표를 의식했지만 표면상 동반성장이라는 허울 아래 시행 중인 일요 의무 휴무가 그것이다. 점포 크기는 소상공인의 슈퍼보다 작고 대기업에 못지않은 중형 프랜차이즈 슈퍼보다 이익을 못 내더라도 대기업이라는 굴레로 매출이 가장 많은 일요일에 두 번이나 문을 닫을 수밖에 없는 게 작금의 현실이다.
면세점은 또 어떤가. 15년 만에 시도된 황금알을 낳는 거위인 서울 시내 면세점 입찰 전에 국내 굴지의 유통그룹이 죄다 뛰어들며 총성 없는 전쟁터를 방불하게 하는데 과연 정부가 일본이나 중국처럼 면세점에 대한 원대한 비전과 분명한 원칙을 세우고 뜻한 바대로 밀고 가는 건지, 그럴 의지가 있는지 묻고 싶다.
합리적 규제 개선 위한 소통 필요
그냥 유커들이 많이 오니까 더 내줘야겠다가 아니라 치열한 견제와 균형을 통한 다양성을 추구하는지, 글로벌 수준의 경쟁력을 지향하는 건지, 이를 위해 어떤 규정과 방안으로 지원에 나서고 불필요한 규제를 어떻게 철폐할 것인지에 대한 모범 답지가 필요하다는 말이다.
서두에 언급한 그 개그맨은 조교의 질책과 여러 번의 시행착오 끝에 결국 '제대로 된 기준'을 찾았다. 우리 사회 역시 끊임없이 소통하고 따지고 조금씩 양보한다면 보편타당하고 더 나은 기준을 만들 수 있지 않을까.
/홍준석 생활산업부장 jshong@se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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