싸움이 시작됐습니다. 누가 봐도 월등히 힘이 센 다윗과 지는 게 뻔한데도 포기하지 않는 골리앗처럼 강자와 약자가 뚜렷합니다. 처음엔 손쉽게 승리를 맛볼 것 같은 다윗을 응원했는데 웬일인지 시간이 갈수록 자꾸 골리앗에 마음이 쓰입니다. 개싸움에서 밑에 깔린 개(underdog)가 이겨주기를 바라듯 약자를 응원하는 ‘언더독 효과’가 발생한 것이죠.
오직 기술력 하나만으로 대기업 틈바구니에서 벤처 신화를 이룩한 팬택. 회생하려 무던히도 노력했지만 결국 파산신청을 하고 말았습니다. 맨손으로 쓴 역사였기에 보는 이들을 더욱 안타깝게 한 결과였죠. 그런데 이런 팬택에 다시 부활의 볕이 들기 시작했습니다. 구원투수 옵티스 컨소시엄의 등장입니다. 서울중앙지법은 16일 팬택과 옵티스 컨소시엄 간의 기업 인수합병(M&A) 양해각서 체결을 허가했습니다. 옵티스는 삼성전자 출신의 이주형 대표가 지휘하는 광학기업으로 알려졌습니다. 물론 아직 넘어야 할 산은 많습니다. 팬택의 부채는 1조원에 육박합니다. 회생의 불씨는 살렸지만 아직 본게임은 시작도 안 한 셈이죠. 그래서 희망고문에 지친 팬택 임직원들은 기뻐하면서도 반신반의하는 분위기라고 합니다.
결과와 관계 없이 일곱 번 넘어져도 다시 일어나는 ‘칠전팔기(七顚八起) ’ 팬택을 응원하는 이들이 많아지고 있는 것만큼 분명해 보입니다. 사람들은 승리의 역사를 좋아합니다. 특히 ‘인간승리의 드라마’라면 말할 것도 없습니다. 강한 공감과 긍정 효과를 불러일으키는 조건이 바로 고난과 역경을 열정과 의지로 이겨내는 감동적인 이야기이기 때문입니다. 누가 봐도 뻔한 싸움에서 이기는 건 감동도 없고 각인효과도 없습니다. 너무 당연한 일이니까요. 그런데 모두의 예상을 뒤엎고 약자가 강자에게 맞서는 그림이 그려지면 지켜보는 이들은 흥분하기 시작합니다. 세상을 사는 우리 대부분은 직장에서, 사회에서 언더독이므로 본인과 일체화시켜 몰입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 점에서 팬택은 그야말로 의도하지 않았지만 진정성 마케팅이란 무엇인가를 여실히 보여주고 있습니다.
언더독 스토리의 주요 요소가 초라한 시작(humble beginning), 희망과 꿈(hope and dream), 역경 극복(struggle against adversary)이라고 합니다. 비전만으로 시작해 대기업과 어깨를 나란히 할 만큼 성장한 전적이 있으니 이제 역경 극복만이 남았습니다. 두고두고 회자 될만한 언더독 스토리가 만들어지기를 진심으로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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