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유의 사건이 터졌다. 예비군이 총기를 난사하다니. 동원예비군 사격 훈련 도중 한 예비군이 별안간 휘두른 소총으로 한 명이 죽고 세 명이 다쳤다. 범인 역시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우선 고인들의 명복을 빈다. 부상자들도 속히 쾌유되기를 바란다.
여론은 군을 질타하고 있다. 물론 사격장 안전 규칙이 제대로 지켜졌는지는 엄정하게 조사할 문제다. 특히 범행 직전 병영 상황과 범행 동기와 연관성을 파악하는 게 중요하다. 해외 출장 중인 김요한 육군참모총장이 일정을 앞당겨 급거 귀국행 비행기에 오른 것도 사안의 중대성을 인식한 것으로 보인다. 만약 안전 조치에 미흡했다면 상응하는 조치가 뒤따라야겠지만 근본적으로 이 사건은 전적으로 군만이 책임져야 할 문제가 아니다.
무엇보다 범인이 예비군이기 때문이다. 예비군이 소집기간에는 군법의 적용을 받는다지만 기본적으로 민간인 신분이다. 고된 훈련과 숨 막히는 내무반 생활에 시달린 현역 병사도 아니고 하루만 더 지나면 퇴소해 민간인 신분으로 돌아갈 예비군이 저지른 참상의 책임 소재는 당연히 우리 사회 전체에 있다. 더 큰 문제는 이런 일이 더 발생할 수도 있다는 점이다. 인명을 경시하는 풍토, 젊은이들의 불확실한 미래, '욱'하고 치밀면 극단적 행위로 치닫는 사회 분위기가 지속되는 한 비슷한 사건은 얼마든지 재발할 수 있다.
국방부는 대책을 마련한다지만 유사 사고를 방지하는 책임도 사회의 몫이다. 만약 우리나라가 미국처럼 총기 소유가 가능하거나 스위스나 이스라엘처럼 예비군이 가정에서 소총과 실탄을 보유할 수 있는 국가라면 어떤 일이 벌어질지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얼마나 많은 사고가 터질지 누구도 장담할 수 없는 게 현실이다. 빈발하는 흉악범죄와 일시적 흥분이 극단적 분노로 쉽게 이어지는 상황은 우리 사회의 수준을 그대로 말해준다.
누구나 총을 가질 수 있다면 우리 사회는 '만인이 만인에 대한 늑대처럼 투쟁하는 상태'로 전락할지 모른다. 이런 사회에서는 경제발전도 기대하기 어렵다. 그토록 총기사고가 빈발하는 미국에서 총기 소유를 금지하지 않는 까닭은 최대의 이익단체라는 '전미총기협회'의 압력 때문이 아니라 건국정신과 관련이 깊다. 미국에서 개인의 총기는 영국 철학자 존 로크가 제시한 대로 '천부의 권리인 개인의 생명과 사유재산권'을 방어하는 물리적 수단이다.
한국에서는 딴판이다. 총기가 개인의 자유를 지키는 보루가 아니라 쌓이고 쌓인 원한과 소외감을 푸는 극약인 사회에서는 경제와 안보 어느 것 하나 온전할 수 없다. 가장 우려되는 시나리오는 모방 범죄다. 한번 터진 사고는 무의식 중의 모방심리를 타고 재발할 수 있기 마련이다. 젊은이들이 희망 대신 절망 속에 살아가는 환경이 사고 재발을 촉발할까 두렵다. 그렇다고 예비군 사격 훈련을 줄이거나 중지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휴전선에 피아 백만명이 넘는 무장병력이 대치하는 한국적 현실에서 동원 예비군은 유사시 승패를 결정할 수 있는 중요 전력이다.
결국 안보도 지키면서 사고도 예방하려면 이번 사건을 우리 사회 모두의 책임으로 통감하는 인식이 필요하다. 구성원 각자가 상대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를 지키고 배려하는 사회로의 복귀가 무엇보다 시급하다. 지난해에도 그랬지만 군에서 가끔 터지는 총기 난사사고와 이번 사건은 건강하지 못한 사회가 만들어낸 일그러진 자화상이라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 사건의 처리를 군의 책임으로만 돌리고 사회가 경각심을 갖지 못한다면 결과는 뻔하다. 우리는 이번 사고를 마땅히 반성의 계기로 삼아야 한다. 사회 전체의 겸허한 반성만이 건강한 개인과 건강한 사회를 낳고 튼튼한 안보와 경제로 이어질 수 있다.
/권홍우 논설위원 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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