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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계가 전통적 비수기인 3월을 맞아 시장에서 검증된 작품을 위주로 선배 이른바 '앙코르 공연 전성시대'가 펼쳐지고 있다. 기획사가 대부분 중소규모라 신작을 내놓아 모험을 선택하기보다는 작품성과 흥행성을 검증받은 작품을 무대에 올리는 것이다. 실제로 인터파크 연극 주간랭킹을 보면 '톱10' 작품이 모두 오픈런이거나 앙코르 공연으로 초연작은 찾아보기 힘들다. 전문가들은 검증된 작품을 지속적으로 올리는 것과 함께 창작극 등 다양한 초연작을 무대화하는 노력을 기울여야 연극 시장의 중장기적인 발전을 도모할 수 있다고 조언한다.
간암 말기의 아버지를 지켜보는 한 가족의 이야기를 담은 연극 '아버지와 나와 홍매와'가 다시 관객을 찾았다. 지난해 9월 초연된 작품으로 신구와 손숙 등 연기파 노배우들의 열연으로 매진행렬을 이어갔던 작품이다. 죽음을 앞둔 아버지를 지키려는 한 가족의 일상을 사실적이고 섬세하게 그려 나간다. 젊은 시절엔 호랑이도 때려잡을 '항우장사'였지만 이제는 간암으로 생명이 꺼져가는 가장, 스물일곱에 결혼해 반평생 남편 뒷바라지를 한 아내, 일류 대학을 나온 형의 그늘에 가려 늘 찬밥 신세였다고 생각하면서도 아버지의 마지막을 지키는 둘째 아들의 얘기다. 극적인 전개나 특별한 반전이 있는 작품은 아니지만, 관객석은 어느새 먹먹해지고 눈물을 터트리며 결국 '나의 가족'을 떠올린다. 이번 공연에서도 초연 때 참여했던 신구, 손숙, 이호성, 정승길, 서은경 등이 출연한다
연극 '그와 그녀의 목요일'이 배우 조재현이 세운 '수현재씨어터'의 개관작으로 다시 무대에 오른다. 2012년 초연한 이 작품은 프랑스 작가 마리 카르디날의 '샤를르와 룰라의 목요일'을 한국 문화에 맞게 재해석한 것으로 황재헌이 쓰고 연출했다. 결혼 빼곤 다 해본 50대 중년 남녀 정민과 연옥의 이야기를 통해 남성과 여성의 본질적 차이와 영원히 풀리지 않는 사랑의 가치를 논하는 작품이다. 사랑에 무책임한 역사학 교수 정민은 조재현·정은표·박철민, 사랑에 서툰 국제분쟁전문기자 연옥은 배종옥·유정아·정재은이 열연한다.
지난 2012년 초연 당시 마니아층을 구축한 연극 '엠.버터플라이(M.Butterfly)' 역시 2년 만에 관객을 만난다. 중국계 미국인 극작가 데이비드 헨리 황의 대표작으로, 1986년 국가기밀 유출혐의로 법정에 선 전 프랑스 영사 버나드 브루시코의 실화를 모티브로 삼았다. 이탈리아 작곡가 지아코모 푸치니의 오페라 '나비부인'을 차용한 작품으로 1964년 중국 베이징이 배경이다. 프랑스 영사관 직원 르네 갈리마르가 오페라 '나비부인'을 보고 여주인공인 중국 배우 송릴링에게 매료되면서 벌어지는 일을 그린다.
2012년 국내 초연 당시 평단의 호평을 휩쓴 백수광부의 '과부들'도 다시 무대에 오른다. 칠레 출신 작가 아리엘 도르프만의 '과부들'은 고문으로 살해된 남자들이 부패한 상태로 강으로 떠내려오자 과부들이 하나 둘 모여 서로 자기 남편이라고 우기면서 벌어지는 사건을 희화화한 작품이다. 독재정권으로 행복을 잃은 사람들의 애환과 죽음보다 못한 삶을 그린다. 예수정, 한명구, 전국향, 이지하 등 대학로 연기파가 출동한다.
지난해 남산 희곡 페스티벌 낭독 공연에 이어 같은 해 7월 초연 당시 평균 객석 점유율 100%를 기록한 '나와 할아버지'도 관객들을 만난다. 멋진 멜로드라마를 쓰고 싶지만, 혈기만 왕성한 공연대본작가 준희가 외할아버지가 전쟁 통에 헤어진 옛 연인을 찾아 나서는데 동행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다. 준희의 눈을 통해 바라본 할아버지의 삶이 마치 한편의 수필처럼 솔직하고 담백하게 이어진다.
2012년 '제2회 대학로 코미디페스티벌' 참가작으로 선정, 초연 무대를 선보인 '유쾌한 하녀 마리사'도 2년 만에 무대에 선다. 소설가 천명관씨의 첫 희곡으로 기발함과 유쾌함이 돋보이는 수작이란 평이다. 바람난 남편 때문에 좌절한 요한나의 자살기도가 하녀 마리사의 유쾌한 실수로 인해 일순간 살인사건으로 둔갑하면서 벌어지는 해프닝을 그린 블랙 코미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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