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산은 도둑질의 산물이다.’ 무정부주의 원조로 꼽히는 피에르 조제프 프루동(Pierre-Joseph Proudhon)의 어록이다. 화폐도 부정한 프루동은 ‘노동화폐’를 도입하려고 애썼다. 프루동은 빈민 출신. 1809년 1월15일, 브장송의 농가에서 태어났다. 도시로 이주한 16세부터 중학교에 다녔으나 부친의 포도주 통 제조사업이 망한 후에 그마저 접었다. 첫 직장인 인쇄소에서 그는 식자공 보조로 일하며 온갖 서적을 섭렵했다. 고전을 읽으며 라틴어와 그리스어, 히브리어까지 독학으로 익혔다. 일찌감치 경험한 사회적 불평등을 그는 ‘소유란 무엇인가’(1840)에 담아냈다. 재판대에도 올랐다. ‘노동으로 인한 재산이 아니면 비도덕적이며 도둑질’이라는 주장과 기소, ‘책의 내용을 이해할 수 없기에 죄를 물을 수 없다’는 판사의 판결 등 재판과정은 그를 유명인으로 만들었다. 마르크스와 만나고 사이가 벌어진 것도 이 무렵이다. 공산주의를 ‘또 다른 속박’이라고 본 그는 자본주의와 상품생산을 부정하지 않았으나 ‘사회악의 근원인 부의 불평등한 분배’의 원인으로 정당하지 못한 권력, 즉 국가를 지목했다. 원조 무정부주의자로 불리는 것도 이런 맥락에서다. 불평등의 핵심을 교환가치(화폐)로 본 그는 국회의원에 당선된 뒤 노동화폐 도입을 위한 인민은행을 세웠다. 노동시간과 가치에 따라 교환비율이 매겨지는 노동화폐는 정치적 탄압으로 빛을 못 봤으나 소지역 단위의 대안화폐로 요즘도 꾸준히 거론되고 있다. 프루동이 추구했던 무정부주의 운동도 공산주의가 몰락한 오늘날 자본주의의 한계를 극복 또는 보완할 제3의 길로 새롭게 조명받는 분위기다. 프루동의 영향이 살아 있는 곳도 있다. 사용권은 인정하되 소유권은 국가가 갖는 중국 토지제도가 프루동에서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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